한 때 심리학을 전공하는 교회 동생이 있었다 나 역시 심리 관련 책을 좋아했던 터라 대화 중 뭔가 내면의 깊은 무언가를 건드릴 때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동생 왈, 심리학 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했었다 "그렇지 심오한 내용이 얼마나 많겠냐며 머리 아플 것 같아" 공감해 주렸는데 응? 전혀 다른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였다
바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이 제일 어렵다는 말.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다 보면 자신을 보고 또 봐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러다 보면 들춰보고 싶지 않은 추억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까지 봐야 하는데 부딪쳐야 하는 그 순간이 참 어렵다는 말였다
나 역시 그 말에 무릎을 쳤던 이유는 같은 상황을 겪어봤기에 가능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나는 살아가며 그래도 더 나은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전에 그 무엇보다 내가 변화되길 바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이 과정을 쉬울까?
결코 쉽지 않다 왜? 변화를 바라기 전에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민낯을 봐야 하니까 때론 내가 맞다며 다른 사람이 바뀌었음 하는 욕심 어린 마음도 여전히 존재하니까
너무 쉽게 상황 탓, 남탓 할 수 있는 나이기도 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에 습관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내가 맞을 때도 있겠지만) 그 모든 걸 부정하려는 이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오직 내 의지에 달린 일이기도 하기에 어렵다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맞다 '나의 변화'로 이끌기까지 난 수많은 선택지에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비우는 연습을 한다
그래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다른 이들에게 변화를 바라는 순간, 바뀌었음 하는 상황에 거는 기대가 커갈수록 나는 되려 환상만 갖게 되고(내가 아는 상대가 이번엔 바뀔까) 바뀔 상황이 아닌 내 욕심만 커져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난 결국 모든 상황 속 결론엔 '나의 변화'에 달려 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 쉽지 않다는 것!
어제 남편과 이야길 하던 중 굳이 안 해도 될 말들을 하고야 말았다 이 말 저 말 내뱉다 보니 내 감정에 충실해져 생각조차 없었던 말까지 툭, 이건 아닌데 했던 그 순간의 자각
그러나 상황은 이미 난장판 되었고 난 나의 숨겨졌던 민낯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왜 이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몇 번 데인 경험이 있는데도 엎질러진 물을 보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난 또다시 바뀌길 바라는 나의 모습 이전에 이렇게 피하고 싶었던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이전 같으면 자책도 더 낮아져 버린 자존감에 바닥을 치고 있었을 텐데 음 이번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곤 있었달까 내가 벌인 일 결국 내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순응의 태도로
그러다 아이와 함께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
'지금의 내가 제일 좋아'
자아존중감 형성 관련 동화책으로 분류 돼 있었는데
읽어주다 보니 내게 건네는 메시지가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불평하는 돼지에게 다람쥐는 말해준다 "만약 네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면 누가 널 알아볼 수 있을까" 그렇게 돼지는 곰곰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였다면 지금의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없었겠지 라며 "난 지금의 내 모습이 제일 좋아"라고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다 난 나의 변화도 꿈꾼다 하지만
더 중요하다 생각되는 건 내게서 아쉬운 점들을 비판하고 자책한다기보다 그 마저도 사랑하고 받아들여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고 실수 가득했던 지난 삶였을지라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또 더 나은 모습조차 꿈꿀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난 선택한다 지나간 일 나로 인해 벌어진 일
그에 대한 책임을 지되 온전히 나의 잘못 보단 나의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실수도 포옹해 주는 자세, 또 넘어질지언정 그래도 다시 일어나 내 무릎 쓱 한 번 턴 뒤 고개 들어 나아가는 내가 될 수 있길 바라며
그래야 더 나은 나의 변화도 바라볼 수 있기에
변화 이전에 쉽지 않을 이 과정, 이런 나란 사람 받아들일 이 과정 역시 그래도 사랑으로 토닥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