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아픈 아이들이 참 많은 요즘, 저희 집에도 감기란 녀석이 찾아와 울 집 꼬마 아가씨와 낮잠에 빠졌답니다.
약 먹고 놀다 연신 하품을 해대는데 잠깐 누워있는 거야(낮잠 자기 싫어하는 4살) 그러더니 금세 잠들어있더라고요.그런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앞으로 펼쳐질 나의 수고로움보다는(아이가 아픔과 동시에 하려 했던 모든 계획은 틀어지고 이런저런 몸과 맘의 에너지가 들겠죠) 지금 아이가 겪는 또 하나의 성장통 그저 잘 이겨냈음 하는 바람이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참 자주 아픈 아일 보며 내 아이는 왜 그리 약한 걸까 나의 부족함을 들쑤시거나 어쩌다 벌어진 걸까에 대한 상황, 사람 탓 내세우기 바빴을 텐데 이젠 제가 좀 내려놓기 시작한 걸까요. 아니면 이것도 몇 번 겪은 거라 맷집이 생긴 걸까요.
아이 옆에서 성경책 몇 자 읽는데 때마침 인내라는 단어로 제게 꼭 필요한? 얘기를 해주시네요.
인내는 겨우 참아내는 게 아니라 내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분이 일하실 것의 소망이 있다면 어떤 상황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요.
'겨우'가 아닌 '거뜬히'
단어 자체만으로 너무나 반대되고 느껴지는 분위기도 참 다르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당신은 인내해야 할 순간을 겨우 참아내시나요?
아님 거뜬히 이겨낼 상황으로 바라보시나요?
그러고 보면 인간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전 매 순간 벌어진 일을 겪고 난 후 조금씩 성장하는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장(배움)의 key포인트는 결국 그 일들 하나하나 제 인생에 우연 아닌 필연이라 생각됐을 정도로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유익으로 끝났었기 때문였는데요. 그래서일까 제가 인내라는 과정을 겪을 때마다 결국은 제게 있어 가장 최상의 열매가 맺혔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 믿음이 계속해서 쌓여있었는지 오늘 만난 인내의 과정은 겨우 보단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바라봐집니다.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는 그리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들은 결국은 날 위한 계획의 전부라는 걸요.
인내가 필요한 순간마저도 결국은 나란 사람을 좀 더 자유하고 평안하면서 내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아이를 향한 엄마로서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아이를 향한 응원으로 희망을 노래합니다 물론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면서요)
특히나 나의 생각마저 어둠 가득한 아래보다는 꽤 다양한 색이 공존하는 위를 향해 나아감으로 결국은 모든 것을 감사케 하시고 겸손의 사람으로 만드실 때면 이전에 겪은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번 일 역시 미리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 괜스레 마음의 여유가 앞으로의 여정이 겨우 이겨내야 하는 힘겨움보다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단 희망을 가지며 살짝 미소를 지어집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제 자신이 지금의 나라는 정체성에 오늘 더 감사가 됩니다.
앞을 바라보며 겪는 인내란 시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비추어 지금 자신의 모습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는데 당신의 정체성은 건강한지 그렇지 못한 지 한 번쯤은 돌아보시길 바라며함께 이 같은 삶을 살 수 있길 저는 기도해 봅니다.
자신을 포함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아직은 믿지도 믿을 생각의 여지도 없지만 조금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