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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Oct 13. 2022

토벌 장군에서 추락한 말년 주준

삼국지에서 황건적 토벌을 맡은 트리오 3명의 장군 황보숭, 노식, 주준 장군 중에서 황보숭이 조조와 합동작전을 벌여서 조조의 능력을 드러내 주었고, 노식이 유비와 공손찬의 사부였다면, 주준은 손견의 능력을 인정하여 적극 추천한 인물입니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중랑장이었던 주준이 표를 올려 손견을 좌군사마로 삼아서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손견은 하비 일대에서 1천 명의 군사를 모아서 주준과 합류하였고, 주준과 손견이 함께 힘을 합하여 분투하니, 가는 곳마다 파죽지세였다고 합니다. 연이은 패전을 당한 황건적은 완성으로 도주하여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하였는데 손견은 황건적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봉에 서서 성벽을 기어오르며 병사들을 독려하여 승리에 크게 공헌하였고 주준은 손견의 공적을 조정에 알려 손견이 별부사마를 제수받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손견은 동탁과는 사이가 나빴지만 주준과는 서로 힘이 되어주는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주준의 행적을 살펴보면 의협심이 남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문화에 존재하는 3가지 이상형 가운데 그 하나로 말할 수 있습니다. 향락에 물들지 않고 백성을 돌보아주는 군주를 가리키는 성군, 뇌물을 거부하는 청렴한 관리인 청관, 의협심이 가득한 지사인 협객 모두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렵지만 그럴수록 중국 문화에서 이상형으로 높이 평가되는 인물의 전형입니다. 삼국지의 관우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 중에는 젊은 시절 고향인 해현에서 악덕 지주를 살해하는 바람에 도망을 다니다가 탁군에 와서 유비와 장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평생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고, 훗날 조조에게 포위되거나 손권에게 붙잡혀도 죽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는 신의를 지키는 모습이 중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서 역사적 인물로는 공자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공자의 무덤을 공림이라고 부른다면 관우의 무덤은 관림으로 황제의 무덤인 능(陵) 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준은 양주의 회계군 상우현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동향의 주규가 공부하러 가면서 공금 백만 냥을 빌려 떠나버렸는데, 주규의 집안이 가난한 것을 알고는 자신의 어머니 비단을 훔쳐서 그 빚을 갚아주기도 하였고, 173년 회계태수 윤단이 허소를 토벌하려다 전공을 세우지 못하여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남몰래 낙양에 가서 관리에게 뇌물을 써서 유배형으로 목숨을 구해주면서도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남의 어려움을 모른 체 하지 않고 또한 이를 떠벌리고 자랑하지 않는 의협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준은 정치에 관해서도 재능을 발휘하였고 178년 베트남 북부 지역을 가리키는 교지에서 양룡이 남해 태수 공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181년 5000명의 병사로 10개월 만에 이를 평정하여 그 공을 인정받아 도정후에 봉해지고 간의대부에 올랐습니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주준은 추천을 받아 우중랑장에 임명되어 토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황건적 장수 파재의 군사에게 패했지만 황보숭, 조조 등과 연합하여 이를 격파하였고 이후 여남, 진국의 황건적을 토벌하였으며 완성을 점거한 황건적을 물리치고 그 공으로 우거기장군, 광록대부에 임명되었고 식읍 5천 호를 받으며 전당후에 봉해졌습니다. 185년에는 하내 태수로 있으면서 흑산적의 반란군을 격파하였고 그 공으로 성문교유 겸 하남윤에 임명되었습니다.      


동탁이 폭정을 펼치어 각 지역의 제후들이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여 일제히 공격해오자 위기를 느낀 동탁은 낙양에서 서쪽 장안으로 천도를 주장하자 용감하게도 주준은 홀로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동탁은 이를 괘씸하게 생각했지만 주준의 명성이 높아 해치지 못하고 천도할 때 함께 장안으로 가자고 제안하였으나, 주준이 사양하자 낙양을 지키는 임무를 맡기고 천도하였습니다. 동탁의 기대와는 반대로 주준은 반동탁 연합군과 내통하다가 형주도 도망갔는데 동탁이 양의를 하남윤으로 임명하자 낙양을 공격하여 양의를 물리쳤습니다. 기세를 얻은 주준은 주변에 동탁을 토벌할 것을 주장하여 지원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동탁이 보낸 이각의 군사들에게 패전하였습니다.      

192년 동탁이 왕윤,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자 동탁의 잔당들은 도주하려고 하였으나 이각의 책사인 가후가 도망하려는 이각에게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묘책을 제시하였습니다.  허수아비 황제를 다시 앞장 세우면서 헌제의 명으로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동탁의 잔당들이 다시금 위세를 떨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각이 주준에게 다시 벼슬을 내리고 조정으로 불러들이자 이제까지 동탁과 동탁의 잔당들과 싸우던 주준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각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195년 권력의 나누어 가진 동지였던 이각과 곽사가 사이가 나빠져 서로 싸우는 통에 정세가 극도로 혼란하여지자 황제인 헌제는 대사농 주준을 양표, 장희 등 대신들과 함께 곽사에게 보내어 이각과의 싸움을 중지할 것을 권하는 임무를 맡겨서 주준은 다른 대신들과 곽사를 찾아갔으나 곽사가 대신들을 모두 인질로 잡아버리자 그 와중에 병이 걸려 195년 죽는 것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주준의 젊은 시절은 의기 있는 협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있고 이를 자랑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인으로서도 패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무공을 세워서 그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감각에 있어서는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탁에 의하여 하남윤에 있다가 반동탁 군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다시 이각이 부르자 이각에게 달려가고 허수아비 황제의 명으로 곽사를 찾아갔다가 인질이 되어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운 것에 비한다면 정치적 판단력은 그다지 예리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자신의 명성에 도취하여 나이가 들어 자신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역사에 추한 이름을 남기고 마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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