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가방 Oct 22. 2022

유비의 스승, 노식 장군

 후한 말에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황보숭, 주준과 함께 트리오 장군 중에 한 명인 노식 장군은 유비와 공손찬의 스승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정현과 함께 마융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일화는 마융이 수업을 진행할 때는 주변에 여자 가수들로 하여금 춤추고 노래하게 하였는데 노식은 마음을 흩트려 트리지 않으며 눈길조차 주지 않아서 마융의 존중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융은 학자로서는 평판이 높았고, 문장에 능하고, 박학하여 '통유'라고 높임을 받았다고 후한서 마융전에 전하고 있으나 권세가 양기에게 아첨하여 태위 이고를 죽일 때, 상주문을 작성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양기의 동생 양불의의 집에 들렸다가, 양불의와 사이가 나빠진 양기의 의심을 사서 유배를 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치가로써는 청류의 반대파인 탁류파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노식의 고향은 유비, 장비와 같은 동향으로 지금의 하북성인 탁현이었다고 합니다. 유비는 가난했지만 같은 집안의 유원식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유비를 노식의 문하에서 공부시키며 후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훗날을 기대한 것인데 정작 유비는 멀리 사천지방인 익주에서 촉을 세웠기 때문에 유원식 가문은 위나라 치하에서 눈치를 많이 보며 살게 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유비는 노식 문하에서 그다지 공부에 열중하지는 않고 인맥을 쌓은 데 더 관심이 있었고, 동물이나 아름다운 옷 등에 더 열중했었다고 하니 가난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의 청소년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노식의 문하에서 형성된 학맥은 유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노식과 함께 마융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정현은 훗날 유비가 원술을 섬멸하고 난 뒤 조조의 공격을 받자 원소의 힘을 빌리려고 하였을 때, 원술과의 악연으로 주저주저 할 때 원소에게 유비를 추천하는 소개장을 써주어서 유비의 살 길을 열어주었던 인물입니다. 정현은 마융의 제자로 훗날 마융의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귀향할 때 마융이 자신의 학문이 정현과 함께 동쪽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할 정도로 우수한 제자였다고 합니다. 당고의 화로 인하여 집에서 연구와 저작에 몰도하였다고 하며 훗날 조조와 대치하던 원소가 초빙하자 원소의 아들 원담과 함께 원소에게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고 합니다.      


강직한 성격의 노식은 167년 환제가 승하하고 조카인 영제가 즉위하자 환제의 장인인 두무가 제후로 봉해질 때, 두무에게 제후직을 사양할 것을 권하였으나 노식의 간언은 무시되었고 제후가 된 두무는 십상시 세력과 싸우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노식은 두무가 화를 당한 169년의 당고의 화 사건을 계기로 관직을 사퇴하였다가 175년 구강군과 여강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추천을 받아 구강태수가 되었고 난을 진압할 후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면서 15세의 유비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진압의 임무를 받아서 황건적의 주력인 장각이 있는 기주 방면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병력 면에서 크게 열세였으나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장각을 포위하여 위기에 몰아넣었지만 마침 전장을 감찰하러 나온 환관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서 모함을 받고 파직당하였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장비가 격노해서 노식을 구하려하고 유비가 만류하는 장면이 유명합니다.     


노식의 후임자로 임명된 동탁은 안하무인의 성격 때문에 병사들의 신망을 잃었고 다른 장수인 황보숭과 주준은 승전했지만 동탁은 패전을 거듭하자 조정에서는 동탁을 경질하고 황보숭을 후임으로 임명하였고 황보숭은 황건적의 잔당들을 완전히 토벌하고 그 공을 모두 노식에게 돌려서 노식이 되어 상서로 복직되었습니다.    

  

영제가 죽자 하진이 하태후 편을 들어 하진의 조카 소제를 임명하면서 십상시와 대립할 때, 원소의 계책을 따라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노식은 동탁의 성격을 겪어봤으므로 이에 반대했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하진은 십상시에게 죽임을 당하고 원소는 환관들을 학살하고 궁궐은 혼란에 빠지면서 환관 단규가 소제와 하태후, 그리고 훗날 헌제가 되는 진류왕을 이끌고 탈출하려다 노식의 기세에 눌려 도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동탁이 어린 황제인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헌제로 옹립하려하자 이에 반대하였으나 소용없었고 동탁은 노식을 죽이려하였으나 채옹의 반대로 그만두자 노식은 낙양을 탈출하여 도망쳤습니다. 노식은 고향이 아닌 상곡군에서 숨어 지냈는데 원소가 그를 초빙하자 이에 응하였으나 192년 병사하였습니다. 원소 밑에 있었던 기간을 잠깐이었고 죽을 때 장례는 관을 쓰지말고 검소하게 하라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노식의 말년은 초라하게도 보이지만 훗날 조조가 207년 진군하던 중 노식의 묘 앞을 지나가면서 묘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예를 갖출 정도로 당대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참고로 조조의 자는 '맹덕'으로 맹자의 덕을 추구하겠다는 청년 조조의 이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자 유비의 자는 '현덕'으로 깊은 덕이라는 의미이고 제갈량의 자는 '공명'으로 공자의 뜻을 밝히겠다는 의미로 후한 말까지는 유가의 가르침이 당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식은 아들은 넷을 두었는데 위로 셋은 전쟁 중에 죽고 막내인 노육 만이 살아남아서 훗날 위나라의 인재등용방법인 구품중정제를 정비하는 일을 하였다고 전하고 았습니다. 노육의 후손은 훗날 위진남북조 시대와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그 명성을 날린 범양 노씨로 명문가임을 자랑하는 가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황건적 토벌에서 공을 세운 황보숭, 주준, 노식 장군은 공은 컷지만 욕심을 부리지않고 절제하면서 깨끗한 이름을 남겼지만, 정작 패전을 거듭한 동탁은 황제인 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세우고 한 때 천하를 주름잡다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을 보면 기회를 살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다지만 하진이 동탁을 불러올 때 노식의 반대 의견을 들었더라면, 왕윤이 동탁을 죽이고 손견의 4대 천왕인 정보, 황개, 한당, 조무를 포섭할 수 있었더라면 아니면 왕윤이 동탁의 죽음에 조문을 한 채옹을 죽이기보다는 그를 포섭하여 자기 편으로 삼았더라면 어쩌면 환란의 삼국시대는 열리지않고 후한의 명맥은 계속 이어지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토벌 장군에서 추락한 말년 주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