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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Apr 13. 2023

<제5화> 낙양의 동탁

황건적의 난 이후에 일어난 반란 중에서 가장 고질적인 반란은 서량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지역의 반란은 역사적으로 고질적이었는데 후한을 세운 광무제도 눈썹을 붉게 칠한 적미적의 반란으로 서량 지역이 황폐하여지자 이곳에 사는 강족들을 중원 지역인 삼보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켜 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삼보지역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좌부풍, 우풍익 등 3 지역으로 주로 관중지역을 가리키는 곳입니다. 서량 지역은 지역 특성상 선비족, 강족, 저족, 호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지나가는 곳이라 인구에 비해서는 많은 군사를 주둔시켜 놓았습니다. 서량 지역의 사람들은 둔전병으로 있는 경우가 많았고 중원에서 먼 변경이다 보니 지역 토착 세력과 이민족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태위 최열이 차라리 서량을 포기하자고 건의할 정도로 오랫동안 골칫거리였습니다. 

 

황건적의 반란이 거의 진압되어 가던 184년 겨울에 서량의 반군들이 북궁백옥을 수령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후한서에는 북궁백옥을 의종호(義從胡)라고 부르는데 의미로 보아 후한에 귀순한 이민족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주로 강족이 거주하는 곳이었으므로 북궁백옥도 강족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 지역의 토호인 변장과 한수가 반란군에 가세하면서 그 세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반란군은 주변을 휩쓸고 다음 해인 185년에는 관중의 삼보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안 인근의 역대 황제들의 무덤이 도굴될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황건적 토벌의 영웅 좌거기장군 황보숭을 파견하면서 동탁을 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동탁 입장에서는 황건적 토벌 과정에서 장각에게 패하여 면직되었다가 강족의 반란을 기회로 복직된 것이었습니다. 

 

서량의 반란군들은 다양한 이민족이 모인 혼성 집단이었으므로 유리하면 진격하고 불리하면 흩어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일사불란한 정규군이 아니었으므로 장기전이 불가피하였습니다. 전쟁이 늘어지자 조정에서는 황보숭을 해임하고 사공 장온을 책임자로 교체하였습니다. 평소 황보숭의 위명이 높아지자 조정에서 황보숭을 시기하는 분위기가 높아져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때 신도현령을 지낸 한양 사람 염충은 황보숭을 찾아와 황제가 될 것을 건의한 적도 있었습니다. 양주에서 무장을 다수 배출했던 명문가 출신의 황보숭은 이를 거절했지만 명성이 높아진 만큼 주변의 시기도 높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황보숭이 해임되자 반란을 일으킨 변장 한수의 세력은 더욱 기세등등해졌습니다. 

 

후임자는 사공 장온이었고 장온은 거기장군에 임명되어 가절을 받았습니다. 가절은 사령관으로 즉결처분권을 가졌다는 의미였습니다. 동탁은 파로장군, 주신은 탕구장군이 되어 장온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전투는 반복되었지만 전황은 관군에게 불리하였습니다. 서량의 반군들은 반란에 익숙하였지만 농민들을 불러 모아 구성된 관군은 민병대에 불과한 수준이었습니다. 185년 11월 갑자기 별똥별이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졌습니다. 유성이 변장과 한수의 진영에 떨어지자 노새와 말들이 놀래서 울었습니다. 이민족들은 미신에 약했고 이들은 별똥별이 떨어진 것을 매우 불길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지역에 밝은 동탁은 이 기회를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동탁은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진격하였습니다. 적을 대파하고 수천 명의 반군의 목을 베었습니다. 변장과 한수는 금성군 유주현까지 도주하였고 동탁의 위명은 서량에 떨치게 되었습니다. 

 

총사령관인 장온은 주신에게 병사 3만을 이끌고 추격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황건적의 난에서 공을 세웠던 손견은 장온의 초청을 받고 참모로 있었는데 주신에게 반군의 식량 수송로를 끊을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주신은 손견의 건의를 묵살하고 단지 적이 모인 유중성을 포위하였습니다. 포위된 반군들은 선수를 치면서 변장은 성을 지키고 한수는 성문을 치고 나와서 관군 후방에 있는 규원협이라는 유일한 식량보급로를 차단시켰습니다. 주신의 부대는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패배하여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동탁은 장온의 명령에 따라 선령강족을 치기 위하여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강족과 호족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군량은 떨어졌는데 고립된 것입니다. 동탁은 소도수라는 큰 하천 옆에 진을 치고 있었고 반군들도 강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포위망을 펼쳤습니다. 동탁군이 도주하면 기습할 요량이었습니다. 동탁은 식량을 보충한다는 소문을 내고 병사들에게 강에서 물고기를 잡도록 시켰습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강 중심에 둑을 쌓고 물을 퍼냈습니다. 반군들은 동탁군의 식량이 더 떨어지면 기습할 생각이었습니다. 동탁은 모래주머니를 준비했다가 한밤 중에 보를 완성시키고 전군을 둑 아래로 은밀히 철수시킨 다음 만들었던 둑을 터트려서 반군이 추격하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장온 휘하의 6개 부대 가운데 오직 동탁의 부대만 무사히 회군하였고 이를 알게 된 동탁의 부하들의 지휘관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조정에서도 동탁의 공을 높게 평가하여 리향후에 봉하고 식읍 1000호를 하사하였습니다. 

 

사령관인 장온에게는 휘하에 동탁의 부대만 남아있었고 동탁은 장온의 진격 명령도 거부하면서 사령관이 현장도 모르면서 명령만 내린다고 불만이었습니다. 장온의 호출 명령도 거부하던 동탁은 결국 장온을 찾아갔으나 전혀 공손하지 않았습니다. 장온의 참모였던 손견은 장온이 가절을 수여받았음을 환기시키며 동탁을 처형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동탁의 기세에 눌린 장온은 방자해진 동탁을 제어하지 못하였습니다. 동탁이 믿는 것은 서량군의 자신에 대한 충성심과 함께 평소 조정의 실세인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쳐 비호세력을 만들어놓은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장수들과 부하들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였지만 동탁과 부하들은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는 운명공동체였습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부하 병사들의 얼굴을 아는 관계가 별로 없는 공식적인 관계였다면 이성계가 이끄는 가별초 구성원들은 함경도 지역에서 대대로 이성계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운명공동체였던 것과 비숫합니다. 

 

반란군의 주축인 한수는 187년에는 변장과 북궁백옥 이문후 등을 살해하고 10만의 대군을 직접 거느렸습니다. 얼마 후 마등이 한수를 지원하자 왕국을 수령으로 추대하고 삼보를 공격했지만 황보숭에게 패전하자 왕국을 내치고 황보숭에게 황제가 될 것을 권했던 염충을 우두머리로 추대했다가 염충이 죽자 내분이 재발되는 등 혼란스러웠습니다. 

 

한수가 마등과 연합하여 삼보 지역을 약탈하자 조정에서는 황보숭을 복직시켜 좌장군으로 임명하고 동탁은 전장군으로 임명하면서 두 장수에게 서량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두 장수는 각각 2만을 지휘하였으나 황보숭이 상관이었습니다. 184년 동탁이 황건적에게 패전하고 복직했을 때와는 달리 이제 동탁의 서량에서의 위명은 비길 데가 없는데도 복직한 황보숭의 지휘를 받는 것을 동탁은 불만스러워하였습니다. 188년 한수와 마등이 진창성을 포위하였을 때 지휘권을 놓고 황보숭과 동탁은 서로 대립하였습니다. 189년 반란군이 포위를 풀고 물러나러 하자 황보숭은 공격을 주장했으나 동탁은 이에 반대하였고 황보숭은 홀로 진격에 나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동탁은 더욱 황보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서량의 반란이 진압되자 조정에서는 동탁에게 병력을 넘기고 낙양의 소부라는 직위를 맡으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소부는 구경의 하나로 황실의 재정을 맡은 문관직이었습니다. 동탁은 상소를 올리며 계속 남아있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제는 다시 동탁을 병주목에 임명하였습니다. 동탁은 다시 거부하였습니다. 병주에 가더라도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시절이었다면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동탁에게는 항명한 죄를 물었을 것이지만 영제 말년의 후한은 내우외환이 계속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동탁도 천하대란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읽고 끝까지 버틴 것인지도 모릅니다. 황보숭의 아들 황보력은 동탁의 불온한 기운을 읽고 아버지 황보숭에게 동탁을 토벌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학자풍이었던 황보숭은 조정에 사정을 보고하면서 처분만을 기다렸습니다. 황제인 영제는 오히려 동탁에게 기존의 병력을 이끌고 병주로 부임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동탁이 군벌화된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동탁은 황보숭이 자신을 참소했다고 생각하며 황보숭에게 보복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동탁은 전방의 일개 지휘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군벌이 된 것입니다. 다음 6회에서는 낙양의 명문 원 씨 가문의 원소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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