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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방 Dec 25. 2020

 태조 이성계의 혼맥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의 통설은 여말선초의 시기를 고려말의 권문세족에서 신진사대부로 교체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설에 대하여 미국인 한국학자인 던컨은 2000년도에 <조선왕조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태조 이성계의동북면군사연합이 당대의 고려 중앙 귀족 지배층의 지지를 배경으로 하는 국왕의 성씨를 교체하는 '개혁적 중흥'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시각을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귀족 묘지의 비석과 과거합격자 명단 등을 그 자료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선 세조의 제갈량으로 불렸던 양성지는 "대가세족(大家勢族)이 있어 간웅이 감히 (발호할)기회를 잡지 못하니 내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습니다. 대가세족은 초석과 방벽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나라를) 지킵니다. 이는 외세의 굴욕적인 요구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양성지는 중국이 명나라까지 23차례 왕조교체가 일어났으나 조선은 단군이래 7왕조만 있는 이유를 대가세족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스위스의 한국학 연구자 도이힐러 교수도 한국 엘리트층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조상의 눈 아래서/2018년> 에서 양성지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개인의 특성에 앞서서 출신가문도 중요하였는데 조선에서 왕비를 배출한 가문이 청주 한씨 5분, 파평 윤씨, 여흥 민씨가 4분, 경주 김씨, 청송 심씨, 안동 김씨 3명, 청풍 김씨, 풍양 조씨 반남 박씨 2명, 17가문이 1명씩 총 30가문뿐인 것도 그 한가지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1335~1408)의 경우 정도전이 함주의 이성계 막사를 찾아간 1374년부터 시작되어 위화도 회군의 1388년 고려의 군권을 장악하여 드디어 새로운 왕조르 열 수 있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기까지 어떤 가문과 혼맥을 형성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직계 적자로는 향처(鄕妻)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6남2녀를, 경처(京妻)인 신덕왕후 강씨를 통하여 2남 1녀를 얻었습니다. 총 11명의 자녀 중 요절한 6남 덕안대군 방연을 제외하고 10개 가문과 혼맥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니다. 


신의왕후 한씨(1337~1391)는 15세에 17세의 이성계와 혼인하였다가 55세인 1391년 조선 개국 1392년 직전에 사망하였습니다. 만약 신의왕후 한씨가 좀더 오래 살아서 큰아들 이방우가 후계자가 되었다면 조선왕조의 초창기의 2번의 왕자의 난이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첫째 진안대군 방우(1354~1393)은 고려말의 권신이었던 지윤의 딸과 혼인하였습니다. 지윤은 청주 지씨로 아버지는 귀족이었으나 어머니가 무당으로 신분이 낮아 말단 병졸로 있다가 공민왕에 의해 발탁되어 재상까지 올라갔던 인물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권세가 이인임과 함께 권력을 누리었으나 권세를 탐하고 남의 재산을 빼앗고 30여명의 첩을 강제로 늘려나갔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인임과 갈등이 심해져서 처형당한 인물로 고려사에는 간신으로 평가되었던 사람입니다. 딸 3이 있었는데 큰 딸은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와 둘째와 셋재 딸은 정종임금이 되었던 영안대군 방과와 혼인하였습니다. 이방우는 아버지 이성계의 개국을 반대하였던 인물로 이방원과는 달리 조선이 건국되자 술로 시대를 한탄하다 1393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 인물입니다. 이방우의 딸은 목은 이색의 손자 이숙묘와 혼인하였습니다. 


둘째 영안대군 방과(1357~1419는 대표적인 문벌귀족의 후예인 경주 김씨인 김천서의 딸과 혼인하였고 권신 지윤의 딸이자 형수의 동생이었던 숙의 지씨와 성빈 지씨를 후궁으로 두었습니다. 동생 이방원에 의하여 마음에 없는 왕이 되었다가 1400년에 태종 이방원에게 양위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냈던 인물입니다. 


셋째 익안대군 방의(?~1404)는 철원 최씨 최인두와 사돈을 맺었는데 최인두는 최영 장군과 11촌이었고 최인두의 큰아버지 최맹손은 최영과 친밀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익안대군 후손으로는 경기도지사와 대통령후보를 지낸 이인제씨가 유명합니다. 


넷째 희안대군 방간(1364~1422)는 고려 충선왕때 명문가로 인정받았던 '재상지종'으로 평가받았던 명문가였던 여흥 민씨 민선의 딸과 혼인하였습니다. 민선은 당대의 유력자였고 민선의 사위 왕복명은 좌우부대언의 직책을, 사위인 이존오는 이색의 제자였습니다. 방간은 2차 왕자의 난(1400년)을 일으켰으나 부하인 박포만 처형당하고 (이방간은) 박포의 꼬임에 빠졌다면서 한강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목숨만은 살아남았습니다. 1422년 태종이 죽고난 뒤, 의정부와 육조의 상소에 따라서 세종대왕은 당시 책사로 활약하였던 방간의 아들 의령군 맹종에게 스스로 자진(自盡)을 명했습니다. 이맹종의 장인은 공양왕의 아버지 정원부원군 왕균이었고 또 왕균의 또다른 사위로 심정이 있었는데 심정의 손녀사위가 성종임금이었습니다. 


다섯째 정안대군 방원(1367~1422)는 여흥 민씨 민제(1339~1408)의 딸과 혼인하였습니다. 민제는 앞의 방간의 장인인 민선과 13촌간이었고 태종 이방원의 사부이자 장인이었습니다. 16살의 나이로 고려 우왕때 과거 문과에 합격하였는데 그때 1등을 한 김한론느 양녕대군의 장인이 되었고 2등을 했던 심효생은 이성계때 태자였던 방석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방원은 병과 7명 중 7등 총 10등의 성적으로 합격하였던 것입니다. 민제는 4남4녀를 두었는데 아들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희 4명 모두 3째 사위인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처형당했습니다. 민무휼은 세종의 장인 심온과 사돈이기도 했습니다. 4녀의 사위중 조박은 명문가 평양 조씨였고, 이천우는 이성계의 조카였으며, 이방원이 셋째 사위이고 노한은 우의정을 지낸 인물입니다. 노한의 아들 노물재는 세종대왕과 동서지간이 되었습니다. 


여섯째 덕안대군 방연은 요절하여 혼인하지 못했습니다. 


큰딸 경신공주(?~1426)는 당대 권세가인 청주 이씨 이거이의 아들 상당부원군 이애와 혼인하였고 무장출신인 이거이의 아들들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장녀와 혼인하였습니다. 

둘째딸 경선공주는 청송 심씨 청원군 심종과 혼인하였는데 심종은 세종의 장인 심온의 형이었습니다. 심종의 딸이 덕수 이씨에 출가하여 그 5대손이 율곡 이이가 되었습니다. 


신덕왕후 강씨(1356~1396)은 강윤성의 딸로 41세에 사망하였습니다. 강윤성의 조카는 이성계의 큰아버지 이자흥의 사위입니다. 친오빠 강득룡은 조선의 개국을 반대하여 은둔한 고려의 충신인 인물로 그의 무덤은 과천종합청사 뒤 서울둘레길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큰아들 방번(1381~1398)은 공양왕의 형 왕우의 딸과 혼인하였고 측실은 원주 변씨 변안렬의 딸입니다. 변안렬은 고려말에 공민왕과 함께 귀국한 장군으로 위화도 회군을 같이 하였으나 훗날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성계의 태자였던 방석(1382~1398)은 처음 혼인한 현빈 유씨가 혼인하였는데 환관 이만의와 사통사건이 일어나 물러나고 다시 현빈 심씨와 혼인하였습니다. 현빈 심씨는 춘추관 대제학 심효생의 딸이었는데 심효생은 1383년 이방원과 함께 과거에 최고령으로 합격한 인물이었습니다. 훗날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 의하여 숙청되었던 인물입니다. 


경순공주(?~1407)은 당대 명문가인 성주 이씨인 이인임의 조카였던 흥안군 이제로 조선왕조 개국공신이었습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혼인한 10명의 사돈들 모두 당대의 명문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정몽주의 손녀가 정종 이방과의 서녀와 혼인하여 사돈지간이었고, 여진족 출신의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도 신덕왕후 강씨의 조카 강순룡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이지란과 같은 여진족 부족이었던 인물의 6대손이 청나라의 태조 누루하치로 연결됩니다. 이상 혼맥으로 살펴본 이성계와 고려귀족간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변화를 '혁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던컨의 주장처럼 '개혁적 중흥'으로 생각하십니까. 한번 생각해 볼 주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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