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기로 한 용기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견디는 법만 배워왔다. 아파도 참는 게 당연했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는 게 어른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했고,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살아야만 나도, 우리 가족도 무사할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먼저 나에게 이대로는 안 된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건강검진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 있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위험했다.
유방암과 폐결절 의심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만 끄덕였다.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돌아오는 길에 천둥처럼 가슴을 울렸다.
그즈음, 딸아이는 자퇴를 결정했다. 말없이 웃던 아이의 얼굴에 자주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걸, 나는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요. 검정고시로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 말에 처음엔 머리가 새하얘졌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아이가 내게 보내는 신호 역시, 오래도록 쌓인 마음의 피로가 흘러넘친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만큼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랜 시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퇴사서를 쓰는 내 손은 떨렸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상할 만큼 조용한 평온이 피어났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냐고.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 거냐고.” 그 대답은 부정이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 이 길의 끝에는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멈췄고 돌아섰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길을 선택했다.
휴직 기간 동안 나는 하루하루를 새롭게 배웠다.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식단을 바꾸고,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났다.
작고 평범한 변화들이 쌓이자 몸은 천천히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마음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쉬고 싶으면 쉬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처럼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 삶을 부드럽게 감쌌다.
딸아이와 함께 걷는 아침 산책길은, 우리 둘만의 작고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걸음을 맞추며 나누는 말들,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쉬는 시간들.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를 위로했고, 또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고받았다.
이제 나는 아프면 병원에 간다. 힘들면 멈추고,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스스로를 다독인다.
예전보다 느리지만, 숨 쉴 틈이 있는 삶이다. 그토록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날, 스스로를 버티게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결심이 내 삶을 바꾸고, 우리 가족을 살렸다. 비로소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남의 속도에 맞춰 달리지 않는다. 지금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 길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나에게 묻는다.
"이제야, 조금 괜찮니?"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다.
그저 이제는, 더 이상 아픈 줄도 모르고 걸어가지는 않겠다는 다짐 하나가
내 삶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