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더는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문장들이 나보다 앞서가게 두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에 대해 규정하는 방식이 어딘가 틀렸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해 쓴 말들이지만, 나를 얕게 들여다보고 오해한 결론이었다.
나는 감정을 다독이고 정리하기 위해 설명에 기댄다. 어떤 감정이 피어오를 때, 그것을 느끼기보다 해석하려 든다. '그때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까? 아마 이 점 때문일 거야. 이런 식으로 마음이 흘렀겠구나...' 화살표를 그어가며 분석한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못 하면 납득이 안 됐고, 감정의 정체가 뭔지 이름이 붙지 않으면 찜찜했다. 설명되지 않으면 내 감정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책과 강연 같은 인풋에 매달렸다. 감정에 해설을 덧입히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권위 있는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감정의 이유와 구조를 파악해야 명확해질 것 같았다. 열심히 주입했다. 책 한 권이 주는 깨달음에서 희열을 느꼈다. 숨어있던 내가 낱낱이 해체되고 훤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 설명서'들을 하나도 놓칠 수 없어 모두 붙잡아두려 애썼다. 빽빽하게 노트에 옮겨 쓰다, 그게 힘들어 타이핑을 해댔다. 나를 비추는 통찰들이 보석처럼 반짝여 빠짐없이 가져가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내 감정으로는 한 문장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엉킨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버릴 것은 버려야 쓸 수 있지만 도저히 선별할 수가 없었다.
터지는 깨달음의 깊이만큼 글로 표현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멈췄다. 진짜 말하고 싶은 순간에 침묵하게 돼버렸다. 완성된 말을 하려다 말 자체를 접어버린 거다.
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했다. 모든 걸 붙잡으려는 시도는 결국 그 자체를 잃어버리게 했다. 깨달음은 수확이 아니라 채집이었다.
그렇게 배출되지 못하고 과잉된 감정은 쌓이기만 하다 증발돼 버렸고, 언어는 점점 둔해졌다. 느끼는 것보다 설명이 앞서가니 감정은 왜소해졌다. 오롯이 느끼지 못한 감정은 빈 껍데기에 담기고도 무거워졌다.
몇 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알게 되었다. 감정은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되는 것이라는걸. 완전하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감정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을 수 있다는걸. 맥락이 붙지 않아도 유효한 감정이 있었다. 분석으로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없어도, 한 조각뿐일지라도, 내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거였다.
모든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남김없이 기억하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이제서야 받아들인 것이다. 한 조각의 감정 안에도 수많은 내가 녹아있을 수 있다. 설명되지 않는 찰나의 감정 안에 스민 나만의 색과 결은 붙잡지 않아도 영영 떠나는 게 아님을 인정하게 됐다. 나를 좀 더 믿게 된 걸까.
지금 나는 다른 길을 걷는다. 감정을 엄격하게 다루던 숨 막히던 길이 아니다. 감정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지나가게 두어도 괜찮다고 자꾸 나를 안심시킨다. 이 감정들이 작은 흔적이라도 남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되뇐다. 모든 걸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한순간의 감각, 그 한 줄에 남은 나를 믿고 흘려보내도 괜찮다. 옅은 흔적만으로도, 나로서 온전히 통과했다면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