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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08. 2024

트레킹을 나섰습니다.

두려움에 관한 생각


맞벌이라 휴일에는 집안일로 분주합니다. 

남편이 쓰레기 분리수거와 어항 청소를 해주는 데도 평일에 소홀했던 부분을 쓸고 닦다 보면 휴일이 다 지나버립니다. 

그날도 집안일을 끝냈더니 오후 5시였습니다. 

쉬는 날은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어 갑자기 억울해집니다. 

“ 자기야! 트레킹 갈까?”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는 남편에게 말을 건넸지만 평소에는 억지로라도 끌려오던 남편이 정색을 합니다. 

“혼자 다녀와, 난 추워서 싫어.” 저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면 고집을 꺾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더 늦기 전에 보온병을 챙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는 둘레길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귀를 기울여봐도 간혹 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 바싹 마른 낙엽 밟히는 소리뿐입니다. 

뒷산 둘레길을 다닌 지는 10년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다녀서 눈을 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합니다. 

처음에는 산 전체를 혼자 가진듯한 기분에 인적이 없는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눈에 가득 풍경을 담았습니다. 

숲 속을 걷는 동안은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복잡했던 마음은 어느새 맑아지고 기분 좋은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찾았지만 여전히 위로고 휴식입니다. 

휴일의 여유로움을 되찾은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워집니다. 

역시 혼자라도 트레킹은 늘 옳습니다. 



평소에는 익숙한 길로만 다녔는데 갑자기 색다르게 즐기고픈 호기심에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만약 길을 잃게 되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오면 되지 하는 생각에 호기를 부렸습니다. 

기대한것만큼 낯선 풍경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평화로운 고요와 볼에 와닿는 바람이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풍경에 취해 걷다가 오솔길 모퉁이에서 낯선 봉분을 발견했습니다. 

묘비와 무덤을 뒤덮은 야생화들이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풍경을 휴대폰에 담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무덤 주변에 담장까지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습니다. 

문득 무덤 속 주인공을 상상하다가 인생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허탈해지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그곳에 머물다가 걸음을 옮기는데 눈앞에 무덤들이 즐비하게 보입니다. 

혹시 공동묘지인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하필 근처에 오랫동안 방치돼서 봉분이 무너져 내린 것과 묘 이장을 한 듯한 흔적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가 쭈뼛해진 느낌에 쫓기 듯 헐레벌떡 뛰어 내려갔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식은땀까지 났습니다. 

그렇게 뛰다가 갑자기 눈앞에 하얀 물체가 보여서 멈췄습니다. 

당황스럽게도 그녀도 나를 보고 “악!” 하고 소리칩니다. 

자세히 보니 여든 정도 돼 보이는 어르신입니다. 

산에서 뛰어오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내 모습에 놀란 것입니다. 

얼떨결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흰옷을 입고 갑자기 나타나게 누군데 ....  혼자서 중얼거리다 멈춰서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생각했습니다.



집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왔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는 길이 나올 때까지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내게 왔던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둠, 공동묘지, 혼자라는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 위험에 대한 불안감... 

본능적으로 회피해 왔던 불편한 느낌들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두려움입니다. 

그런 생각들로 발걸음은 추를 매단 듯 무거웠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익숙한 곳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보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그제야 안심이 되고 평화를 찾습니다. 

밤이지만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그들은  사람과 세상과 얽매이지 않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지병이 치유되고 각종 트라우마에서 해방되서 건강을 되찾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에 묻혀 살아갑니다.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삶.

좋아보이지만 그렇게 살수 없어 대리만족으로 즐겨보곤 합니다

시청하면서 그들의 삶이 부러운 부분도 있지만, 동의할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산속이나 무인도에서 혼자산다는것...

상상만으로도 그 삶은 두렵습니다.

저는 혼자서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지만 어둠도 고독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지금 살고있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오래도록 살아가고싶습니다.




앞으로 트레킹은 늘 다녔던 아침 시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간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에 도착하기 전 고개를 돌려 뒷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미 어둠에 묻힌 채 고요합니다. 

숲도 나도 편안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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