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밤

달빛아래서

by 다움

따로 또 같이 첫 문장

달빛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



달빛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 밤, 달빛은 우리가 나눴던 말들, 손끝의 떨림, 노래 한 자락 까지도 조용히 품었다.

우리는 열일곱의 끝자락에 서 있었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조심스러웠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같은 반 친구가 슬쩍 말해줬다. “걔, 너 사진도 가지고 다닌다더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지만, 마음 한쪽이 간질간질 해졌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쳐다보면 괜히 딴청을 부렸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무심한 척 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속으로는 어쩔 수없이 ‘언제쯤 말을 걸어올까?’ 하는 은근한 기대가 자라났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책가방이 어깨를 짓누르던 날이었다.

나는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유난히 가깝게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 친구가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달랐다. 장난기 섞인 말투도, 웃음기 어린 표정도 없이 말없이 내 옆에 걸었다. 버스에 함께 올랐고, 내 정류장에서 함께 내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구나.’


그날 밤,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망설임 끝에 이어진 고백은 짧았지만, 단단했다.

“좋아해. 오래전부터 그랬어.”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상상했던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숨이 막힐 듯했다.

설렘과 벅참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우리는 근처 공원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처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법관이 되고 싶어.”

그가 말했다.

“불공평한 세상,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어서.”

그저 평범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깊은 꿈이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너는?”

그 질문에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 노래 부르는 게 좋아. 내 노래로 누군가가 위로받았으면 좋겠어.”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들려줄 수 있어? 나만 듣게.”

그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노래를 시작했다.

“검은빛 바다 위를 밤 배 저 밤 배…”

달빛 아래, 내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노래를 불렀던 밤.

숨죽이고 듣던 그의 눈빛은, 말보다 진한 찬사였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정말 잘 부른다. 고마워! “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고,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서툴렀지만 진심이었고, 떨렸지만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했던가…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교사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에게 꿈이 뭐였냐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 노래를 가끔 들을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날의 달빛, 고백, 그리고 노래.

달빛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밤, 누군가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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