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월에 아쉬운 그 것

by 페트라

크나 큰 선물입니다. 가을이란!

내가 어디를 걸어가든 단풍진 주변 모습은 사진작가가 찍은 프레임이고, 자연이 나를 모델로 만들어 주어 더 돋보이게 하는 11월이 다 갑니다.

또, 저야 비록 아마추어 농사이지만 배추며 무며 당근이며 대파며 단감과 홍시를 거두면서 감사를 올릴 수 있는 11월을 보내면서 딱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지켜야하는 이유가 뭔지요.

물론 이러한 이의 제기가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의 정서와 교감하지 못하는 꼰대스러운 생각이지만 저의 빼빼로데이 단상을 늘어놓고자 합니다.

제과업계나 유통업계에는 미안한 말입니다만, 그나마 올해 빼빼로데이는 그리 흥행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우리 정체성을 찾으려는 국민들의 노력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고, 직장생활때에도 꼰대처럼 말해왔던 젓가락데이나 가래떡데이로 지키자는 주장이 실제로 검색해보니 많은 지자체 등에서 지키고 있었고, 교육기관 등에서 젓가락질 대회를 하는 것들을 보면서 흐뭇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 써본 ‘빼빼로데이 단상’이라는 글을 옮겨보려 합니다.


11월의 거리는 은행열매의 구린 냄새를 뒤엎는 초콜릿 향이 떠돈다.
편의점 진열대는 빼빼로로 무장했고, 아이들은 빼빼로를 사기 위해 부모님을 조르며, 연인들은 서로에게 과자를 건네며 ‘너무 얇아서 부러지겠다’는 농담을 나눈다.
현직일 때 내가 있는 사무실에도 빼빼로가 놓인다.
아예 연말을 지나 심지어 해를 지나서도 굴러다닌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11월 11일이면 우리 농경문화에 맞게 차라리 젓가락데이나 가래떡데이로 바꾸면 어떨까?”
먼저, 젓가락의 날이다.
젓가락은 짝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한쪽만으로는 아무리 길고 반짝여도 떡볶이 하나 제대로 못 집는다.
과일은 찍어먹을 수 있다고??
우리는 숟가락 젓가락 문화이지 포크문화는 아니다.
요즘 같은 ‘혼밥의 시대’에 젓가락은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준다.
둘이 나란히 움직일 때 가장 쓰임새가 있고, 사람에게 유익한 도구임을 안다면...
그럼, 가래떡은 어떨까.
아무려면 어쩌랴.
하얀 그 모습은 백의민족의 상징이고, 긴 형태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심플하지만 쫄깃하고, 아무 양념 없어도 맛있다.
게다가 구워서 조청에 찍어 먹으면, 진한 인생의 단맛이 난다.
어쩐지 그건 ‘사랑’보다 ‘정’에 가깝다.
우린 달콤한 과자보다 따뜻한 떡으로 마음을 나누는 민족 아닌가.
기업이 만든 빼빼로데이도 좋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고 나눌수만 있으니 말이다.
아무려면 어쩌랴.
하지만 사람이 만든 온기의 날이 더 오래 남는다.
젓가락데이나 가래떡데이가 우리 정서와 가깝지 않은가.
더구나, 쌀소비 부진으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 자취를 감춰가고 단맛만 추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국민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오면 저는 외손자와 한가지 할 것이 있습니다.

가래떡을 구워먹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써보겠습니다.


“할아버지! 빼빼로 사주세요!”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던 외손자가 편의점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외칩니다.

인스턴트 푸드에 노출을 덜 시키고 싶었던 저는 잠시 머뭇하다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거 말고, 우리 가래떡으로 먹을까”

“가래떡 데이요? 그건 또 뭐예요?”

“빼빼로는 얇아서 배도 안 차잖아. 가래떡은 배가 부르고 또 너는 떡을 좋아하쟎아?”

그렇게 우리 둘은 집에 들어와서 주방에 섰습니다.

프라이팬 위에서 가래떡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외손자는 옆에서 에디슨 젓가락질 연습을 합니다.

“이렇게 잡는 거야. 젓가락은 친구처럼 붙어 있어야 돼”

“저도 어린이집에서 혼자보다는 친구랑 같이 놀때가 좋아요”

“그래 그게 인생이야. 같이 움직일 때 맛있는 걸 집을 수 있거든”

“인생이 뭐예요?”

“하하하!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이란다”

한창 말배움중인 외손자와의 티키타카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요즘 저는 즐거움과 함께 행복감마저 느낍니다.

외손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묻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랑 나도 젓가락이에요?”

“그럼! 너 오른쪽 젓가락, 나는 왼쪽 젓가락”

“그럼 제가 더 짧쟎아요? 크기가 다르면 젓가락질 하기가 어려운데...”

“하하하!”

우리 둘은 웃으며 가래떡을 뒤집었습니다.

노릇노릇한 겉면이 반짝이고, 조청에 찍어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외손자는 입가에 조청을 묻히며 말합니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근데 친구들은 초콜릿 먹는데요.”

“괜찮아. 그건 달콤한 하루고, 이건 따뜻한 하루거든. 그리고 그건 인스턴트 푸드란다”

그날 밤 인스턴트 트푸드를 묻는 손자를 위해 ‘똥꼬 장군’이란 그림책을 일어주면서, 왜 인스턴트푸드나 패스트푸드가 안 좋은지, 건강한 장을 위해서는 뭘 많이 먹어야 하는 지 알려줬습니다.

외손자의 추가 주문에 가래떡 두 개가 프라이팬 위에서 나란히 눕습니다.

마치 세상 모든 젓가락처럼, 나란히 있어야 맛있는 인생처럼 말이죠.


그날 저녁, 외손자는 딸과 사위에게 말했습니다.

“11월 11일엔 우리 집은 빼빼로 대신 가래떡 먹기로 해요. 할아버지가 가래떡데이로 하자고 하셨어요. 근데 말이죠, 훨씬 맛있어요”


“하하하! 호호호!”

그날 밤 밖은 추웠지만, 가장 따뜻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