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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헬리베 붕탄질산...

"지식을 갈구하는 이는 늙지 않는다"

by 페트라

지금도 기억하는 저의 암기물들을 떠올리며 행복을 추억합니다.


자! 그럼 나열합니다.

수헬리베 붕탄질산 플네나마알규 인황염 아칼카....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태혜정광 경성목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외에도 첫 글자를 외우며 암기력을 늘려나가는 것은 더 있겠습니다만, 어렸을 적 이 것들을 무작정 외웠던 때를 떠올리는 것만도 추억에 젖어드는 행복을 선사합니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고 많이 얘기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나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곤 한답니다.

위 다섯 가지만 추억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것은 지금 다 크고 나니 이렇게 쉽게 외워지는 것이 그 때는 왜 이리 안 외워지며 과학 선생님께 항상 혼났는지 모릅니다.

헬륨가스를 알고 나서 소풍 때 이걸 마시고 선생님께 헐크같은 인사를 하며 장난을 쳤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두 번째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외웠지요.

한국인이라면 아마 다 외우고 있을 조선조 임금님들의 재임 순서인데, 조선왕조 사극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선물이었죠.

세 번째 것은 고려의 임금님들 순서이고 여덟 분만 외웠는데, 지난해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나서 왜 현종이었는지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네요.

네 번째 것은 십간 십이지인데, 한 해가 시작되고 다음 해를 맞추는데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지식이 되었네요.


다섯 번째 것은 행성들의 순서인데, 언젠가 명왕성이 탈락되고 말았네요.

그렇지만 워낙 입에 붙어 ‘수금지화목토천해’로 끝나면 뭔가 맺음을 하지 않은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명왕성이 뭘 잘못했나요? 하하

비록 주입식 교육이고 시험이라지만, 저의 앞에 도사렸던 문제들을 풀어 준 이 암기법. 그리고 이 것을 누군가 처음으로 만들었을텐데 이 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아마 그 분은 만인에게 유익을 끼친 영향으로 자손만대로 복을 받고 살았을 겁니다. 하하!

그리고 입에 체득화된 주입식 교육 잔재들!

이러한 잔재들은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시를 외우고 시조를 읊조리는 정서를 키워줬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강나루 건너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선생님께 숙제검사를 맡아 가며, 때로는 꿀밤을 맞아가며 암기했던 싫디 싫었던 모든 암기물들이 이제는 저의 정서를 키우고, 또 술자리에서 외워가며 젠 체하고 또한 뇌를 녹슬지 않게 하는 선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자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는 저에게 뭘 안 보고도 무작정 칠 수 있는 아주 좋은 교보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보재가 몇 십 편이 되는 지 모릅니다.

이 교보재를 사랑의 매와 함께 안겨 주신 존경하는 저의 모든 은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암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김형석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지식을 갈구하는 이는 늙지 않는다고...

암기도 지식의 일부입니다.


요즘은 제게 새로운 암기 루틴이 생겼습니다.

영어에 젬병인 제가 세 네줄되는 통문장을 하루에 하나씩 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목표를 키워나가, 무려 15분 정도(유튜브 편집본) 되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15분을 통째로 외운다는 것이 가능할 지는 의문입니다마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 매년 1분씩이라도 연장시킬 것이라는 전략을 세우는 것 자체와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을 생각하면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암기가 무슨 행복을 이끌어 주겠냐고 의문을 가지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저 어떤 목표에, 사물에, 현상에,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또다른 암기에도 도전하렵니다.

외손자와 친해지기 위해서 공룡들의 이름을, 그리고 모든 공룡들의 특징을 다 외울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외손자와 같이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입니다.

왜 모든 (남자) 아이들은 공룡과 ‘똥 이야기’를 그렇게 즐거워할까요.

하여튼 조만간 유튜브 등을 통해서 <강아지 똥>도 볼 것입니다.

직업 전선에서 은퇴했다고 뇌마저 은퇴해서는 안됩니다.

늘 새로운 것을 외우고 뉴스나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면서 지혜를 키우고 소통해나갈 생각입니다.

뭘 많이 잊는 나이입니다.

냉장고에 뭘 꺼내려 갔다가 ‘내가 뭘 꺼내려 했지?’하고 자책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답은 자책하지 말고 냉장고에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오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중요치 않은 망각은 새로운 기억을 채우기 위한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기억 총량제’로 움직인다고도 할 수 있지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망각이라는 씨줄과 기억이라는 날줄이 엮여 가며 뇌를 촘촘하게 채우는 과정이 아닐지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암기력은 떨어져도 종합판단력과 수용력은 좋아지는 때입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최고 저서인 새로운 두 과학을 72세에 저술했다고 하지요.

세상의 많은 유명인들도 노년에 기라성같은 연구결과를 내고, 책을 써서 후대에 선물로 내 놓습니다.


‘닥외!’ 오늘부터 닥치고 외우세요.

‘수헬리베 붕탄질산...,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앉아...,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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