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 달 3남매 중 둘째 아이를 결혼시켰습니다.
아들을 처가에 보내는 대신 새로운 딸을 맞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설레는 달 12월에 치러진 결혼식이니 만큼 앞으로 이 딸과 가꿔갈 행복스런 삶이 설레입니다.
그런데 식을 치루고 나니 하나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축의금 봉투를 계산하다 보니 유난히 15만원이 든 축의봉투가 많았습니다.
7년 전 첫째아이 결혼식때 두세개 정도 15만원짜리 봉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뒤로 제가 직접 방문하는 결혼식은 15만원 봉투를 쓰곤 합니다.
지금부터 15만원 봉투에 대한 저의 마음가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추측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15만원 봉투에 대한 긍정 이미지부터 추측해보겠습니다.
첫째, 15만원은 물가·경기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인 금액입니다.
요즘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을 고려하면 10만 원에서 약간만 올려 15만 원을 내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성의가 담긴 금액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관계에 따라 적절히 조절한 균형 있는 선택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20만 원 이상, 덜 가까운 지인에게는 10만 원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5만 원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중간값’으로 관계의 친밀도를 적절히 반영한 금액이라는 평가를 줄 수 있습니다.
셋째, 신랑·신부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금액입니다.
축의금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도 예식 준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준의 금액이기에 ‘적당한 정성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금액’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넷째, 과하지 않은 ‘예의 있는 금액’이라는 점입니다.
부담스럽게 보일 정도로 큰 액수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에게 의도치 않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예의는 지킨 금액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한 번 보겠습니다.
첫째, 애매해서 기준이 불분명한 금액이라는 점입니다.
보통 10만 원, 20만 원처럼 딱 맞는 금액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15만 원은 ‘어중간하다’, ‘기준 없이 낸 금액처럼 보인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상대에 따라 ‘적게 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친한 친구, 직장 동료처럼 20만 원을 기대하는 관계에서 15만 원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셋째, 생각에 따라 관례에서 벗어난 금액이 될 수도 있습니다.
10·20·30 단위처럼 반올림된 금액을 선호하기 때문에 15만 원을 ‘매너 없는 금액’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수 있습니다.
넷째, 상대가 ‘조금 더 보탤 수 있었는데 줄였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15만 원은 흔히 ‘10은 적고 20은 아까울 때 선택하는 금액’이라는 인식이 있어, 관계의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혼식 봉투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먹은 만큼은 내고 가야지”라는 생각 말이죠.
사실 15만원이라는 금액이 애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단순히 체면을 차리는 돈이 아니라, 내가 이 자리에 와서 받은 한 끼의 대접을 ‘민폐 없이’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식 식대는 적지 않은게 사실이지요.
특히나 호텔 결혼식이면 더하고, 뷔페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10만원을 넣으면 어디선가 마음이 찔립니다.
“내가 먹은 값은 채운 걸까?”
그렇다고 20만원을 넣자니 내 주머니 사정이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라는 고민도 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고민사이에서 15만원이란 금액은 일종의 ‘체면과 양심의 타협점’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는 결혼식에서 단순히 한 끼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정성껏 준비한 자리에 초대받은 것이고, 그 초대에는 축하의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조용히 앉아있어도, 축하를 크게 외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인생에 작은 표식을 남기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식대를 부담하려는 마음은 단순한 금전 계산이 아니라 예의의 표현이고, 어쩌면 “너의 기쁨에 내가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배려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결국 15만원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금액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봉투 한 장에 식대, 관계, 배려, 체면, 속마음까지 모두 재고 넣으려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식은 그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축복이 되는 자리이고, 봉투 금액은 그저 숫자일 뿐입니다.
상대는 내가 낸 돈보다, 내가 시간을 내서 그 자리에 와주었다는 사실을 더 크게 기억하곤 한답니다.
혼주로서의 저도 저희 집안 예식이 “초라하지 않고 북쩍이게 되어 다행이다”, “토요일하루를 오롯이 투자한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실제로 제 고향은 전주인데, 예식장인 성남까지 대절버스를 타고 오거나 직접 개별적으로 올라온 지인들이 여러 분 있었습니다.
차암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식대는 식대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제 지인 중에도 네댓개 정도의 15만원 봉투가 있었습니다만, 아들 직장동료나 친구로 추정되는 하객들의 봉투는 30여개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계산적’이라기 보다 ‘배려심 가득찬 봉투’이고,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결론까지 내립니다.
하여튼, 20만원이나 그 이상의 금액은 친밀도가 어느 정도 실린 금액이지만, 15만원짜리 봉투는 친밀도를 고민하지 않으면서도 내 밥값은 내가 정산한다는 마음 표현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도 결혼식장을 직접 방문하실때 5만원이나 10만원으로 신랑신부로부터 뒷담화가 걱정되신다면 15만원짜리 봉투를 활용해보시는 것을 조심스럽게 권장해봅니다.
15만원은 체면과 양심의 타협점이면서 배려심의 궁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