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백수의 품격

by 페트라


전작(前作)(‘작심삼일의 역사’, 1.6)에 이어 새해 계획과 관련된 글을 한편 더 써보렵니다.

제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럼 제 의지는 뭘까요.

‘해보고 싶은 일 하기’입니다.




퇴직(2025.6.30 정년퇴직) 이듬해가 되면서 작은 성가신(?) 고정적인 질문과 답변이 생겼습니다.

“퇴직했으면 이제 뭐 해?”

“아 저 할 일이 많아요. 고향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간 이뻐해 준 어른들도 찾아뵙고, 양가 부모님도 모시고, 밭농사도 재미로 하고, 세종에서 손주도 가끔 봐주고, 도서관에 가서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무엇보다 매일 헬스장에 가고 이것저것 많아요. 백수가 과로사하는 거죠 뭐ㅎㅎㅎ”

“아니, 그거 말고 하는 일 있어”

“꼭 있어야 해요? 60이 넘었으니 몸 관리 잘하는 게 제일 아닌가요? 뭐 한다는 게 job도 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무계획1.jpg


하고 싶은 일 하기 위해서 저는 병오년 새해 계획은 스킵했습니다.

그렇다고 게으르겠다는 선언도 아니고, 포기하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획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가벼워질듯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나’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고 있는 나로 돌아온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목표가 없다고 길을 잃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 풍경이 더 잘 보이며 그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서 의미 있었던 일들은 계획적인 것들보다 대부분 계획에 없던 것들이었고 운과 은혜 속에서 이뤄진 것이 더 많았습니다.

34년간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친 일, 약속이 취소되어 혼자 걷다가 만난 사람, 별생각 없이 신문이나 읽자고 들린 도서관에서 꽤 우수한 책을 읽은 일, 그리고 그 책이 소장하고 싶어 직접 구매까지 한 일... 정말 여러 가지가 많았습니다.

또한 어렸을 적 꿈인 아동문학가를 접어놨다가 브런치를 만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금의 저의 만족을 가장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들은 저의 새해 계획표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지요.


통상 1월 1일이 되면 SNS는 온통 각오와 다짐으로 채워집니다.

올해는 꼭 운동하겠다는 사람, 담배를 꼭 끊으리라는 사람, 책 50권 읽기에 도전하는 사람, 새로운 언어를 배우겠다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


모두의 새해는 반짝이는 목표들로 가득합니다.

저도 매년 1월이면, 아니 정확히 전 해 12월 어느 즈음이면 새 노트를 펼치고 빼곡하게 계획을 적었습니다.

길게는 반기별 분기별 목표를, 짧게는 월별목표와 주간 루틴, 그리고 하루 타임테이블까지 마련하였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설계한 1년은 대개 2월쯤 되면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3월이면 노트는 서랍 깊숙이 들어가 있고 제 머릿속 계획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무계획적 삶의 습성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실패한 건 아니었지요.

목표의 절반쯤은 이뤘고, 나름 성장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남는 건 '완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입니다.

10개 중 7개를 해냈어도, 못한 3개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새해 계획은 의지력이 박약한 저를 더욱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입니다.

거창해지지 않으니 대신 작은 방향 하나가 또렷해집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하기’입니다.

하고 싶은 일!


앞에서도 대략 얘기했지만, 그런 일 말고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많습니다.

저를 만나는 분들은 “뭐라도 하는 일(job)이 있어야 늙지도 않고 하루도 지루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있어서 심심하지 않고 시간 때울 일은 더더욱 없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저의 새해 계획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될 대로 돼라’ 식이 아닌 것은 다들 아시겠지요?!

매월 매주 매일의 루틴은 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고 의식의 흐름은 매 순간 저를 어느 것으로 이끌어댑니다.


그렇다고 새해 계획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동력이 되고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더 이상 미래의 제가 ‘해냈다’ 혹은 ‘못했다’로 판단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싶습니다.

올해 12월 31일, 저는 아마 이렇게 되뇌고 싶습니다.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네. 큰 방향만 세우기를 잘했어”라고 말이죠.


저의 계획대로라면 2027년 정미년 새해는 늘 새로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매일매일은 어제의 연장선 위에서, 나를 조금 덜 다그치며 하루를 건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계획입니다.




저는 올해도 분명 무언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지인들 만나며 사람 속에서 생을 도탑게 가꿔나가는 것부터 뉴스와 교양을 쌓으며 세상과 더욱 연계되어 사는 것 등등등

항상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런 것 안 해도 세상 사는데 아무런 문제없지만, 나는 세상과 ‘연결’이라는 단어 속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여전히 지껄이면서... 무계획 속에서...

다만 계획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그리고 결심이 아니라 습관으로 말이죠.

이 것이 은퇴한 지금의 저에게 가장 현실적인 계획이 될 듯합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한 저의 계획!

역설적이지만, 이게 지금의 저에게는 가장 좋은 시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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