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콘 노섹을 외치는 섹시함을 몰랐던 때를 회상하며.
그와 연애를 하는 내내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날이 드물었다. 나는 그와의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매번 불안함에 떨었다. 정말 한 번도 빠짐없이 매번 생리가 밀렸기 때문이었다.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3주까지. 물론 피임은 했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서 불안함은 극에 달했다. 생리가 밀릴 때마다 임신 걱정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연애 초반에는 강경하게 콘돔사용을 요구했는데 갈수록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가 그간에 받은 성교육은 무슨 필요였나 정말 바보 같았다. 연애를 하기 전에 콘돔을 끼우는 연습을 누구보다 잘, 빠르게 해내던 내가, 어째서 이런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자괴감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안전한 피임을 위해 좋은 콘돔을 박스로 시켜서 몇 개씩 늘 지니고 다녔었는데, 매번 분위기에 휩쓸려 강경하게 콘돔을 찾아오지 못했다. 임신에 대한 불안함도 극에 달했지만 스스로가 멍청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는 무조건 노콘 노섹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분위기가 달아올라도 콘돔 사용을 잊지 않는 사람이 더 섹시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참 간사하게도, 다시 정상적으로 생리를 하고 나면 도로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두려움을 모르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가끔 엄마가 네게 "피임은 꼭 잘해야 한다"라고 강조할 때면 심장이 떨렸다. 어느 미래에서 엄마가 나타나 나를 질타할 것 같았다. “내가 피임을 잘하라고 했잖아”하며 나를 원망할 미래가 보였다. 엄마가 그런 말을 내게 하는 이유도 친오빠가 혼전임신의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생리가 한 달 가까이 밀렸을 때, 애인에게 두려움을 말했다. 생리는 밀리는데 가슴은 부풀고 머리도 아프다고, 나는 PMS도 없는 편인데 무섭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임테기를 해봐"였다. 그걸 내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닌데 말이다. 임테기를 한다는 건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죽기 전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나는 두 줄을 감당할 수 있을 때 테스트를 하고 싶었다. 내가 두 줄을 보고 죽지 않으려면 그 정도 안정이 필요했다. 그 안정은 그의 반응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만약 두 줄이면 우린 어떡하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져 미치는 줄 알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내 삶은 더욱 망가져갔다. 누구에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통으로 밀어 넣었다. 샤워를 하면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져나오고 수시로 복통이 생겼다. 겨울에도 늘 따뜻했던 손에 냉기가 흐르고 입술은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음주를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임신이라면 잘 낳아 키우고 싶은 마음도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안함에 떠는 나를 전혀 안정시켜주지 못했다. 내 고통의 공감을 하거나 앞으로의 피임을 신경 쓰는 노력도 전혀 없었다. 섹스는 같이 즐기고 모든 고통은 여자가 다 감당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미치도록 비참했다. 이렇게도 나의 고통에 무심한 사람이랑 연애를 한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는 나와 이별하는 날에도 “내가 경제적으로 돈이 없어서 임신 걱정에 더 불안했겠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헛웃음이 났다. 정말 모르는구나. 몇 번을 말해도 단 1%도 알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현실적으로 그에게 돈이 없는 사실은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불과했다. 나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픈 나를 걱정해 주고 앞으로의 피임을 신경 써주는 것. 그것 말고는 원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무엇도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몇 달을 혼자 견디다가 애인에게 장문 카톡을 보냈다. 생리가 밀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냐고, 그 불안감이 너무 심해서 힘들다고, 정말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앞으로는 정말 콘돔을 써야 한다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관계를 원치 않을 때는 관계를 안 하고 싶다고 강경하게 나갔다. 그렇게 잠시 후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시간을 갖자"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댕댕 울렸다.
내 머릿속에 시나리오는 단 2개뿐이었는데, 그중 시간을 갖자는 반응은 없었다. 1번.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앞으로 피임을 잘하자 약속하거나 2번. 왜 참아왔던 이야기를 한 번에 하냐고 당황스럽다고 화내기. 하지만 시간을 갖자니, 다시 내 피를 말릴 셈이구나 싶었다. 솔직히 이게 시간까지 가질 일인가 싶었다. 내가 이토록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이별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 차라리 지금 이별을 하는 게 나에게 이로울 일인 것인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나의 장문 카톡을 끝으로 우리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을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그와의 추억을 꺼내보고 이별노래를 들었다. 그러다가 술을 먹고 잠시 이성을 놓았다. 술을 마시고 그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보고 싶다는 연락을 해버렸다. 그에게 사과를 받지도 못할 망정, 화를 내지도 못할 망정... 보고 싶다는 연락이라. 2024년 최대의 후회였다. 그러자 그에게서 칼같이 빠른 답장이 왔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나는 너랑 이별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게 나는 상대에 대한 불만도 잊은 채 또다시 안심했다.
길었던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그와 대면 만남을 가졌다. 나는 내심 그가 시간을 갖는 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 기대했다. 그렇게 고민한 생각의 결론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피임에 대해서 공부를 했으려나? 여자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했으려나? 이제는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나?’ 당연한 기대 속에서 그는 네게 말했다. 콘돔을 끼면 내가 아파했던 이야기와 본인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관계를 억지로 강요했던 일에 대해서는 그럴 의도가 없었고 몰랐다는 그런 이야기들 네게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들을 끝으로, "관계를 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남성이 성관계를 하지말자고 말하는건 굉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오... 뭘까 어째서 저런 결론이 도출된 것인지 당혹스러웠다. 잠시 후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관계를 안 하는 건 나도 싫어. 그냥 콘돔을 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는 곧바로 내 말에 수긍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타협점을 찾고 침대로 갔다. 하지만 정작 콘돔을 끼고 관계를 하니 느낌이 낯설긴 했다. 뭐, 익숙해지겠지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콘돔을 잊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그는 답했다. 자신이 지내는 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으니 거기에 두고 키우면 된다고.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 거구나 싶었다. 사실 진작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겨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만약 아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전생의 카르마 업보로 받아들여 나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와의 연애를 지속할수록 내 안의 여성성이 훼손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인권의 가치를 그토록 중요시했던 내가 이렇게 멍청한 행동만 줄줄이 한다는 게 이토록 슬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아질 것이라고,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여성들아, 나의 몸을 지키고 사랑하자. 노콘 노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