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의 불안감은 여성의 것일까?

연애와 성관계, 임신의 불안감

by YearoftSea

언젠가부터 생리가 밀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파국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이별을 뭐 이리 두려워했는지 싶다. 시간을 가진 이후에 내가 다시 콘돔 사용을 이야기해도 우리는 밤만 되면 그 약속을 잊었다.


생리가 밀리는 불안과 고통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정확히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앞으로 위험한 날에는 콘돔을 써야겠네"라고 했다. 나는 “내 주기가 불명확해서 계속 콘돔을 써야 해”라고 말했다. “그래” 그 말이 끝이었다. 이번 한번 만이라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써주었다면, 나를 조금만 다독여주었다면, 그가 미워졌다.


이번 달에는 몸이 달랐단 말이다. 평소 생리가 밀리던 것과 다르게 관계 후에 생리가 아닌데 핑크색 피가 일주일 간 계속 비쳤다. 착상혈이구나 싶어서, 나는 그냥 임신이겠거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열은 오르고 두통은 심해지고 가슴이 뭉쳤다. 정말로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심장이 뛰고 무서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조리며 전화를 끊고 임테기를 했다. 한 줄이었다. 그 한 줄을 보고 눈물이 미친 듯이 났다. 하느님께, 부처님께 만신에게 감사를 빌었다. 특정 종교는 없지만 신이 정말 나를 지켜준다 믿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신의 뜻이 느껴졌다. 당장 이별을 하라는 그런 신호.


나의 고통에 이토록 무던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 이후로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끔씩 화가 났다. 애인이 내게 많이 하던 말이 있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 그 말이 네게는 마치, 진흙에 빠져서 살려달라 외치는 나를 애인이 지켜만 보는 듯 느껴졌다. 애인은 진흙에 빠진 나를 어루만지며 사랑한다 말하는 느낌이었다. 진흙을 뒤덮은 너라도 나는 사랑한다고. 내가 필요한 사랑은 나를 진흙에서 꺼내 깨끗하게 씻겨주는 것인데 말이다.


임신의 공포에 너무 심하게 시달리다 보니까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애가 생기면 그럴 인연인 거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내가 우리 관계의 현실적인 미래를 보게 만들었다. 그 진실을 깨닫자 우리는 파국으로 향했다. 더 이상 애인은 나에게 단순한 애인이 아니었다.


나는 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불확실한 그와의 미래를 설계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은 우리 집안의 능력을 믿기로 하고,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혼자 키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낳은 뒤 미래에 애인은 없었다. 나는 애인의 성이 마음에 들어 물려주고 싶었지만, 애인을 내 남편으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장난기 많고 철없이 밝은 모습이 좋았는데, 그 모습이 나를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아이도 낳고, 애인도 내가 키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안정시켜주지 않는 애인이 미웠다. 아니, 나를 안정시킬 줄 모르는 그의 행동이 답답했다. 그는 내가 아프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눈치 보게 만든다며 불만을 표했다. 난 생리가 밀리는 3주 내내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서도 데이트를 할 때마다 억지로 기분 좋은 척 연기를 해왔었다는 걸 그는 알까. 내가 그와의 미래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미래를 보고 혼자서 비참함을 견뎌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아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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