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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Mar 25. 2022

파리 - 에펠탑에 대하여

(14) 파리 - 에펠탑에 대하여


부산 어딘가에서 소품샵을 홀린 듯 들어간 적이 있다.


소품샵이라니, 내가 일생에 세 번 정도는 들어갈까 싶은 장소일 텐데, 그렇게 한 번을 들어갔었다. 사실 구경만 하고 나올 심산이었으나, 너무 적막한 가게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사장님 덕분에 뭐라도 골라잡은 것이 제일 저렴한 사진엽서였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불 켜진 에펠탑의 야경이 들어차 있는 엽서였는데, 그래도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꽤 나쁘지 않아서 냉장고 내 눈높이쯤 맞게 붙어 2년 가까이 눈을 맞췄다.


에펠탑은 일종의 주입식 설렘 버튼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꼭 여행에 관련된 콘텐츠에는 비행기나 에펠탑이 상징적인 이미지로 등장하고, 파리에 가면 꼭 해야 할 몇 가지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빵이나 와인을 먹는 것이 빠진 게시물은 못 봤으니까.


나는 딱히 파리라는 도시에, 에펠탑이라는 건축물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한 차례 첫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에도 프랑스는 건너뛰었다. 그럼에도 파리와 에펠탑은 여행이라는 행위의 상징과도 같아서, 언젠가는 가봐야지 정도의 목표의식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에펠탑을 그렇게 갑작스럽게 대면하게 되었다. 가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저 멀리 보이는 것을 따라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고개를 들어 저 친구를 바라보며 걸어가면 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모습, 가로등 사이로 보이는 모습, 센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강물에 비친 모습이 또 예쁘다. 저 멀리 다리 위에 걸린 모습은 또 어쩜 저럴 수 있는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걸어가 보자는 결정은 탁월했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가며 보이는 모습들이 하나하나 모두 새롭다. (처음 보는 것이니 새로운 게 맞다.)




예쁘다. 딱히 환상 같은 건 없었는데, 중얼중얼. 마침내 앞에 서서 본다. 기대하지 않았던(못했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환상일 저 빛나는 철제 타워가 가지는 의미를 이제야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여행의 정수와 같은 상징물을 그렇게 정면으로 대하니 드는 생각은, 여행을 잊고 살지 말자며, 가능할 때 어떻게든 떠나보자며의 다짐.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빛나는 철제탑이 들어찬 사진엽서는 여전히 냉장고 내 눈높이쯤 붙어있다.


다만 이제는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다 주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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