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크무슈 Mar 25. 2022

파리 - 가면 있어요

(13) 파리 - 가면 있어요

나는 ‘가면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여행 한정인데, 저 한 문장이면 내가 왜 여행을 갔으며, 어땠는지 따위의 대략적인 감상을 전달할 수 있다. 사실 구구절절 다녀온 여행에 대해 떠드는 편이 아니라(또는 귀찮아서), 아련한 듯 허공을 바라보면서 얘기한다. “가면 있어요…”


샤를 드골 공항을 탈출하며 하루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버린 탓이다.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다. 악명이 자자한 파리의 치안이라던지, 대중교통의 치안이라던지, 밤의 치안이라던지를 신경 쓰느라 주변이 보이지 않을 줄 알았다. 숙소는 에뚜알 역 근처였다.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주변에 경계를 늦추지 말자.’ ‘짐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저 사람들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지?’ ‘소리를 질러야 할까?’ ‘어서 지하를 벗어나자.’ 따위의 생각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아 이미 공포감이나 긴장감에 젖어 주변을 둘러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걸로.


쇳빛의 지하철과 역사


처음 타보는 파리의 시내버스, 지하철에 대한 첫 감상이라던지, 들어설 때에 나는 냄새라던지, 파리 지하철의 안내방송은 짱구 엄마가 아니구나, 정도를 느껴보았어야 했거늘. 적당히 우중충한 색감의 역사(驛舍)와, 깊은 지하, 쇳 빛의 지하철 정도의 일차원적 감각과 함께 몸을 실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은 오해로 약간은 상기된 채 에뚜알 역에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끌어 계단을 타고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10분만 길 따라 내려가면 된다 그랬지. 보고 또 봤던 구글맵을 되뇌며 계단을 오르니 캐리어가 바닥에 텅하고 던져 올려졌다. 이제야 겨우 허리를 펴본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오자마자 맞이한 광경, 에펠탑과 개선문이 함께 보인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아니 내가 파리에 와있다는 걸 잊고 었었던 듯 말이 안 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아주 뜬금없이 몇 번 출구 인지도 모를 계단 앞에서. 허리도 채 마저 펴지 못한 채, 고개를 바로 하지도 못하고, 눈앞의 말이 안 되는 장면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개선문 사이에 아주 살짝 에펠탑이 보인다.


한 시야에 파리의 두 상징이 한 번에 들어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아, 이미 파리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렇게나 에뚜알 역을 모를 수 있다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야 고백하지만 난 사실 에뚜알이 개선문인지 몰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발, 캐리어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