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파리에서 제일 잘한 것
파리에서 제일 잘한 것은 의외의 경험에 있었다.
파리는 출발 전 간신히 예매한 루브르 박물관 말고는 일정이 없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여행 애플리케이션에서 ‘꼭 가봐야 할~’ 정도의 지식으로 방문했다. 모든 여행이 이런 식은 아니니 오해 말아주시길.
급하게 떠나 계획이 없었던 것뿐이고, 파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상식이라 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으니 잘못된 여행은 아닐 것이라 본다.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무책임한 여행을 보여준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방법이랄게 없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말고는 무슨무슨 영화에 나왔던 어떤어떤 다리, 어떤어떤 광장, 맛있는 빵집이나 음식점 같은 ‘알면 여행이 조금 더 풍성해질’ 정보들은 나에게 없었고, 그렇다고 길가에 서서 맛집이며 관광지를 일일이 검색하며 돌아보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럼에도 이런 날치기 같은 여행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고,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나만의 감동이 있다. 혹은 아쉬움에 다시금 방문의사를 불태운다던지. 어떤 마음가짐이든 손해는 없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 왔고, 온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으니까.
파리에서 제일 잘한 것은 의외의 경험에 있었다. 세세한 계획이 없었던 관계로, 아침 일찍 에펠탑 아래서 느긋하게 커피나 마실 심산으로 나왔다. 달콤한 빵에 커피를 곁들여 먹고 난 뒤, 파리 여행의 유일한 일정이었던(계획이 없었으므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이 꽤나 멀었기에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머리를 굴리며 걷자니 에펠탑을 정면으로 두고 지난밤 내팽개쳐진 듯 누워있는 공유 킥보드가 눈앞에 보였다. 마침 쓰러져 있던 킥보드 중 하나가 한국에서 종종 사용하던 플랫폼의 킥보드라 바로 사용이 가능했다.
구글 지도로 경로를 대충 긁은 후 내달렸다. 살짝 차가운 파리의 11월 아침 공기가 뺨을 기분 좋게 긁고 지나간다. 손은 약간 시리다. 센 강변을 따라 달리는 장면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다. 마침 강가를 따라서 자전거 도로가 꽤 잘되어 있다. (킥보드로 자전거 도로 운행이 되는지 몰랐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킥보드를 타고 운행 중이었다.)
눈치껏 킥보드 운전자들과 합류하며 뒤섞였다. 에펠탑을 등지고 왼편으로는 센강을 따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내달렸다. 예쁜 건물들이 줄지어 스쳐 지나가고, 각자의 목적으로 이 도로를 내달리는 사람들과 섞인다. 이 사람들이 현지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정지신호에 맞춰 선다. 이름도 모를 예쁜 다리를 왼편에 끼고 정차했다. 잠깐이지만 주위를 둘러본다. 옆에서 함께 서있는 사람에게 가볍게 끄덕여 인사해본다. 의도치 않게 잠깐이나마 이 도시에 녹아든 기분이다.
공유 킥보드라 함은 보통 지하철 출구에서 회사까지, 지각의 느낌이 강하여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때, 내가 또 이걸 타게 됐다며, 지하철이며 사람이며 출근길 아침에 마주친 모든 것들을 욕하면서 타던 것이었거늘. 에펠탑과 센 강을 끼고 달리고 있으니 이 어쩜 역설적인지.
덕분에 출근길에 다시 타게 되더라도 문득 떠오를 이 날의 기억이 조금은 기대된다. 욕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파리에서의 뜻밖의 공유경제 여행은, 괴롭다는 출근길의 통념을 조금은 바꿔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