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참외가 벌써 나왔다. 제철은 분명 여름인데, 긴 팔 옷소매를 걷어 볼까 할 무렵, 벌써 노란 참외가 좌판에 깔린다. 잘 익은 듯 샛노란 빛깔에 어울리지 않는 눅눅한 풀향은 꽤 멀리서부터 맡을 수가 있어서, 장을 보러 오가다 벌써 참외가 나오냐며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우리 엄마는 참외를 참 좋아한다. 단감도 좋아하고 곶감도 좋아하는데, 그중 참외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면 꼭 참외를 깎아준다. 속에 있는 씨를 함께 썰어 접시에 담아줄 때도 있고, 씨를 다 걷어내고서 내어줄 때도 있다. 배가 아플 수도 있다나. 우리 가족들은 참외가 꽤 익숙한 과일이라 다른 집에서도 종종 참외를 먹겠지 했었는데, 언젠가 우리 집에서 친구들이 밥을 먹고 간 날, 참외를 몇 년 만에 먹어본다며 신기해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참외를 좋아한다. 씨를 발라준 참외 몇 조각에 영혼을 팔 기세로 학습했던 모든 행동(앉아, 엎드려, 뒤집어가 전부다)을 반복하는데, 잘게 자른 참외 조각을 한 손에 들고 강아지와 대치하는 엄마를 멍하게 바라보며, 참외 이게 그렇게 맛있냐며 심드렁하곤 했다.
우리 엄마는 참외를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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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른다.
'아들은 무심하다'라는 세상 모든 아들들이 변명거리로 쓸 속 편한 문장이 있어서, 그저 무덤덤해도 되는 줄 알았다. 누나가 있으니까, 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난 아들이니까, 내 앞가림하기도 힘드니까, 엄마는 이해해 줄 거니까.
언제인가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참외가 참 실하고 향긋해서, 별생각 없이 한 봉지를 샀었다. 현관문을 열고서 난리 치는 강아지와 재회의 순간을 적당히 나누고, 엄마한테 참외 봉지를 내밀었다. 늦은 밤인데도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너무 맛있겠다며 지금 당장 먹어 보자며 참외를 씻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는 참외를 참 좋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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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아빠가 없긴 했다. 차 사고로 요절했다. 내 나이 다섯 살이었고, 엄마는 서른두 살이었다.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까닭은 순전히 그녀의 치열함이자 처절함이었다.
당시 엄마의 나이를 지나쳐 오는 요즘엔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녀는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그녀는 나의 엄마이고 싶었을까.
그녀는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있었을까.
서른다섯이나 된 그녀의 자식을 보며 지난날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참외 한 봉지에 배시시 웃으며 부엌으로 달려가는, 자그마한 저 소녀 같은 익숙한 뒷모습을,
나와 누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믿음으로 따라 걸었다. 뒷모습만 보느라 미처 살피지 못한 그녀의 표정과 감정은 그녀의 나이를 지나서야, 이제야 감히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버림받았다 생각했을 그녀의 삼십 대를 말이다.
나는 그녀 삶의 목적이자 목표였을까.
나는 엄마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일까.
언젠가 나도 참외를 좋아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