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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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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May 13. 2024

가장 가깝고, 가장 어려운

'고맙다'


아침 수업이 끝날 무렵,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잠시 멈칫하다 아빠와의 가장 최근 대화를 떠올렸다.


'아,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지.'

하루가 지나고 온 메시지.

'고맙다'는 단 세 글자.


생각해보니 전날 카톡 창을 기준으로 스무 줄 가량의 감사인사와 함께 용돈을 보냈는데, 이 아저씨는 함축의 정석. 딱 세 글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아빠에게 오랜 시간 단련된 나는 저 세 글자가 어떤 사고체계를 거쳐 어떻게 나왔는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알이 뜨거워진다.


에잇. 또 쓸데없이.


휴대폰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혼자 곱씹다가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 휴지를 찾는다. 저 세 글자가 뭐라고.


아빠는 나를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빠랑 똑같이 대화할 거라고 입을 꾹 닫은 채로 몇백 번 몇천 번 마음을 먹다가도, 툭 던진 한마디에 꼭꼭 감춰뒀던 꼬리가 어느새 흔들흔들. 기다렸던 말들이 줄줄 나온다. 아빠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몰라. 가끔은 대답 없는 녹음기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면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빠의 행간을 상상하는데 능통해진다. 인간관계를 맺어갈 때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건 이런 아빠 덕분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인간관계.


그런 아빠를 이해하는데 꼬박 삼십 년을 넘게 썼지만, 지금도 나는 아빠의 취향, 아빠의 꿈, 아빠의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당신이 뭘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 준비해 봤어요, 상태로 아빠를 대해볼 뿐. 그러다 뭐 한두 개 얻어걸리면 뿌듯한 거지.


그럼에도 신기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상형의  번은 아빠 같은 사람이었다.  크고 잘생긴 외형은 물론이고, 아빠의  대쪽 같은 신념이 나는 좋았다. 스승의 날에  주고  받기 운동을 하는 선생님. 누군가 교감실에 몰래 두고  선물을 도로 가져가라고 CCTV 돌려보겠다고 안내방송을 하는 빡빡한 사람. 엄마랑 가면 유치원생이 되는 놀이동산이 아빠랑 가면 당당하게 초등학생이 되는 것도. 누군가는 융통성이 없다 말할  있는  한결같음이 어릴 때부터 좋았다.  침묵을 뚫고 나오는  마디의 무게감. 아빠가 뭔가를 말하면 그건 믿을  있을  같아서 그랬던 걸까. 그런 아빠를 답답해하면서도 좋아하고, 계속해서 아빠 곁을 강아지처럼 맴도는  정말 미스터리다.


남들은 딸 바보라며 공주니 딸랭구니 뭐니하는 애칭으로 딸을 부른다지만 우리 아빠는 그런 법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예슬이가 예쁜 편은 아니지!"


봐라. 이 한결같음.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이런 부분에선 나도 아빠를 닮아 진심이 없는 듣기만 좋은 칭찬은 잘 못한다.


또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집 안밖의 모습이 가장 다른 사람이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많은 말을 꺼내는 사람이라 그런가. 집에서는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지 말이 없다. 한 번씩 아빠의 대외적 이미지에 익숙한 지인 분을 만날 때면 ‘우리 아빠가 이런 모습도 있구나’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듣다 보면 아빠가 조금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가장 가까워야 할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은 나와 당신의 거리를 서운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오랫동안 연습한 한 가지다.


최근 몇 년간은 비교적 아빠와의 대화가 많았던 시기다. 가족을 소재로 하는 연극을 만들면서 아빠를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고, 연극을 준비하며 촬영한 영상 속 아빠와 나의 투샷이 매스컴에 나오기도 했다. 처음으로 아빠가 내 일을 궁금해했고, 공연장에 본인 친구들을 잔뜩 데려와 나를 당황시켰다.


참 알아도 알아도 모르겠는 양파 같은 아저씨.

그게 우리 아빠다.


글을 쓰며 좀 정리하고자 했지만, 대실패다. 써도 잘 모르겠고 하나의 줄기로 정리가 안 된다. 앞으로도 나는 아빠에 대해서 모르는 걸 계속 발견하고, 평생 그 사람을 알아만 가겠지. 그가 나를 사랑하는 온갖 방법을 탐구하면서 아빠의 행간을 읽고 또 눈물을 그렁그렁 흘릴 것이 분명하다.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난 이렇게 아빠를 평생 짝사랑 할 것 같다.


아빠와의 앞으로는 또 어떨까.

그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마 나는 그런 아빠 곁에서 끊임없이 쫑알쫑알 말을 걸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오늘은 뭐해요?"

"요즘 무릎은 안 아파요?"

"운동은 했어요?"

"밥은 뭐 먹었어요?"

"이 영화 봤어요?"

"다음 병원 예약은 언제예요?"

"이번 연휴에 서울 올라올 거죠?"

"산책하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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