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다섯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크무슈 May 10. 2024

본 적 없는 아빠에게



제목을 쓰고서 꽤 많은 시간을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분명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길 바라기도 했었는데, 도무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빠란 단어가 어색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빠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꺼낼 때에도 괜히 가 어색합니다. 아직까지도요. 그래도 지금은 조금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 잘 살고 있습니다.


아빠,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나이를 무사히 잘 지나왔습니다. 그 해에는 엄마가 꽤 예민했었습니다. 운전하는 것을 평소보다 더 싫어했었고, 내가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면 저녁때마다 하지 않던 전화를 하곤 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예민하냐며 투덜거려 볼까 생각도 했는데, 아빠 당신이 떠올라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며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궁금하진 않으신가요.


혹시라도 제가 아빠 당신을 원망할까 봐, 꿈에서라도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원망했던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하면 슬프지만,

당신이 일찍 제 곁을 떠날 사람이었다면, 그럴 운명이었다면, 당신에 대한 기억이 채 완성되기 전에 떠나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빠 당신을 보낸 시간이 이미 아스라이 흘러버려서, 슬픔이 그저 아쉬움으로 바뀔만한 충분한 시간이어서,


'덕분에'라는 단어가 당신에게는 가슴 아픈 말이겠지요.

그렇지만 덕분에, 지금 우리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아빠 저는 꽤 잘 컸습니다.


키도 큽니다. 얼굴도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도 잘 해내고 있습니다. 틈틈이 여행도 다닙니다. 공부도 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재 덕분인지 사춘기는 별 탈 없이 지나왔습니다. 아빠 당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단한 엄마의 노력 덕분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엄마한테 슬쩍 고맙다 인사를 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어색하겠지요. 부자의 연은 책에서도 TV에서도 많이 봤었는데, 아빠 당신과 저의 재회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술을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빠 당신이 첫마디를 꺼내기 어려우시다면, 조용히 술잔을 채우겠습니다. 취기가 조금 오르면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을까요.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괜스레 코끝이 시큰합니다.

아빠란 말을 당신을 떠나보낸 후의 30년보다, 오늘 하루에 가장 많이 불러본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아빠가 되겠지요.

그때 한 번 더, 아빠 당신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처음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매거진의 이전글 '멋지다'는 말이 어렵게 다가오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