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멋지다’는 말이 종종 어렵게 들린다.
나는 하는 일의 종류가 많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가 넘치는 항상 열심히 사는 멋진 사람으로 비칠 때가 있다. 작업하는 것들의 이면은 수익도 잘 안 나고, 주먹구구식에 체계가 없을 때도 있고, 혼자서 아등바등할 때도 많지만, 대외적으로는 화려하고 그럴듯한 결과물로 보인다.
"무슨 일 하세요?"
"저는 N잡러인데요. 연극하고, 요가하면서, 글 쓰고, 그림도 그려요. 최근에는 작은 다큐도 한 편 만들었고요…"
“와! 진짜 멋지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혹여나 상대가 오해할까 봐 말이 길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과하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죠.
"음... 그냥 연극을 하다 보니 생계가 어려워 요가를 시작했고, 단체활동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혼자 하는 작업이 하고 싶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또, 연극을 준비하며 자료조사 차 찍었던 영상을 계기로 어쩌다 다큐를 찍게 되었고요..."
나도 안다. 이 모든 게 내 입장에서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더라도, 타인의 눈에는 멋진 사람처럼 비춰지는 거. 사실 난 보잘것없는 한낱 예술인 노동자로서 이 사회 속에서 1인분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애쓰는 건데.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나를 멀리하는 이유가 될 때, 나는 멋지다는 말이 참 어렵게 다가온다.
지난해, 오랜만에 했던 첫 소개팅 후기에서 주선자를 통해 이런 말을 들었다. "멋진 분인 거 같은데, 그분한테 내가 부족해 보여서 애프터는 안 했어"라고 상대방 분이 말씀하셨다고.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저 간만에 소개팅이라 너무 떨려 들고 간 타로카드가 원인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진 소개팅에서 다시 한번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음... 혹시나 싶어서 이번엔 타로카드는 두고 나갔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한 달 정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분에게는 "참 멋지고 밝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하고는 많이 다르죠. 어떨 땐, 상대적으로 제가 우울한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함께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 나랑 여덟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자리도 안 옮기고 맥주 마셨잖아. 내 기억엔 네가 나보다 말이 더 많았어.
이번엔 멋지다는 말과 함께 추가적으로 '밝음'까지 붙었다. 아 내가 밝으면 네가 어두워지는구나. 나도 우울할 때 많아. 내가 말 없을 땐 또 얼마나 말이 없고, 내가 조용할 땐 또 얼마나 조용한데. 내가 요가할 땐 또 얼마나 차분한데…
갑자기 이 모든 게 갑갑하고 어색해졌다. 소개팅뿐만 아니라, 그냥 사소한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하는 일부터 나 자신까지. 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라는 확신 없는 말이 입에 붙었고, 나의 에너지가 상대를 부담스럽게 할까 봐 어디까지 웃고 어디까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디까지 밝은 척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낯가림이 심하다는 말을 굳이 먼저 꺼내면서 방어벽을 쌓았다. 이후 이어진 몇 번의 소개팅에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어색하게 앉아있다 왔다. 그런 내 모습이 고장 난 로봇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멋있다는 말만 들으면 마냥 감사하지 못하고, 한 발 뒷걸음질 치는 내 마음이 무서웠다.
나도 안다.
당연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 또한 물론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그러니 이건 그냥 내 넋두리다.
요즘들어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인간관계가 부쩍 어려워진 나를 토닥이는 작은 푸념같은 거.
멋지다는 말만 듣고 관계가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은 그 지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다. 나를 얼마나 감춰야 할지 한동안 감이 오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면서 눈치를 보다 보니 새로운 인간관계를 애써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동안 느슨하고, 굳이 애쓰지 않는 관계를 추구했다. 적절한 거리에서 장점으로 보일 정도의 내 모습만 적당히 보는 지인만 무진장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는 진짜 모습을 숨겨버릴 굴을 파듯, 친한 친구가 있는 영종도에 주기적으로 달려갔다.
아주 예전 나의 첫 독립출판 워크숍 진행자였던 재은이 쓴 글에 내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그녀의 강한 에너지가 부담스러웠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그 에너지를 곁에서 느끼면 나도 기운이 나서 예슬에게 그 변화를 이야기했다. 당신이 달라진 건지, 내가 달라진 건지, 가까워지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전엔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든든하고 힘이 된다고.'
- 오늘보다 더 사랑할 수 없는, 다른 경로를 추천합니다 중 -
그 당시 재은이 느꼈던 감각을 나는 뒤늦게 알았고, 그저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음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돌아보면, 나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내 삶에는 나의 다양한 모습을 따뜻한 시선과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술기운을 빌려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선배가 멋진 이유에 대해 술술술 말해주는 후배도 있고, 자신과 다른 부분을 되려 장점이라고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친구도 있다. 나의 추진력 옆에 있을 수 있어 많은 경험을 하게 되어 함께하는 게 좋다는 동료도 있다.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콩! 날아오는 돌멩이에 나는 참 나약하게도 다시 움츠려든다.
때때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두렵다.
나의 긍정과 열정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떡하나.
그저 내가 가진 모습이 타인에게 부담스럽지 않길 바랄 뿐.
한 때는 내가 가장 듣기 좋아했던 말.
듣다 보면 신이 나 뭐든 더 하고 싶었던 말.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줬을 소중한 말.
멋지다는 말을 그냥 큰 의미 없이 감사하게 듣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바라는 건
멋지다는 말 뒤에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