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다섯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용신 Apr 21. 2024

이젠 벚꽃을 보면 울컥 할 것 같다.

사랑 #1

이젠 벚꽃을 보면 울컥 할 것 같다. 나는 다시 울 수 있을까.


할머니가 리무진을 타고 공원으로 가시는 길 양쪽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은 벚꽃이 한 가득이었다. 

넋놓고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을까 했지만, 손에는 운구를 위한 장갑을 끼고 있어서 그냥 바라만 보았다.


3시간 전,

어둠속에서 올라오는 울컥거림이 있었지만,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시간 속에 앉아서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잠시 눈을 붙이거나, 할아버지 곁에서 하루를 지키고 있었다. 불과 24시간 전에는 새로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었는데.


오전 6시 30분,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조금만 더 자야지 하는데,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벌써 5분이 지났을까, 하고 바라본 화면 속에는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항상 머릿 속에 준비하던 시나리오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버지의 눈물을 함께 지켜야만 했던 시간들.

외할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계신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나는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혹여나 어머니의 슬픔이 다가왔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용신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대. 편하게 주무시다 가셨다네.” 

설마 하면서 받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웃는 듯, 우는 듯이. 그 이후로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께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일어났다. 

냉철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게 뭐지. 뭘 챙겨야 하지?' 

일단. 울지말자. 지금 울면 힘이 빠지니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슬프지만 울지 말자.


9년전 4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스물여섯살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버벅이고 짐나르기 바빴다. 우는 아버지를 붙잡고 서있는게 전부였다. 


3년전 1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서른두살의 나는 아무도 없는 텅빈 장례식장을 지켰다. 코로나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을 대신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다. 사망신고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외가측에서 맞은 첫 장례. 

서른다섯의 나는 담담하게 외할머니의 빈자리를 맞이했다. 당장의 먹먹함으로 심장이 요동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내 머리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 슬퍼서 울고 싶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나의 눈물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오열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울면 힘이 빠지니까. 지금 내가 무너지면 안되니까. 가족을, 어머니를 챙겨드려야 하니까.


2박3일 장례식장에서의 시간. 나는 울컥하는 순간마다 나를 다잡았다.

입관만 하고 울어야지.

화장만 하고 울어야지.

정산만 끝내고 울어야지.

집에가면 울어야지.


너무나 작디 작아지신 외할머니를 공원에 모셔두고, 나는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속 감정들은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벚꽃은 바람에 따라 하늘하늘 도시를 수놓아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벚꽃 길을 거닐 때면 난 오히려 계속 울컥 할 것만 같다. 울지는 못하고 울컥하기만 했다.

나까지 울어버리면 정말 외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나에게서 떠나갈 것만 같아서. 울컥하다가도 울지 못하는. 결국 나는 장례식이 끝나고 상복을 벗을 때 까지 울지 못했다.


사랑이라는게, 특히 가족의 사랑이라는게 그런 것 같다. 


다음 벚꽃이 피면 나는...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 만나게 될) 그대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