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퇴사, 모모씨에게 쓰는 편지
퇴사 날의 기분은 꽤 말랑말랑했다. 여기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특히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꽤 많이 만들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감을 여러 에피소드로 경험한 탓이다.
나름 회사생활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 역량보다는 인복이 있었던 걸로. 평판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회사생활을 잘하는 n가지 방법’ 따위의 계발 서적 같은 말이 나올 필요가 없다. 사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생계를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고, 그들 나름의 테크닉과 노하우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과연 무엇이 정도(正道)일까 싶다.
나의 경우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일을 했다. 감사하게도 비슷한 나이대의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한 팀이 되었고, 이 사람들이 또 노예근성이 충만한 사람들이라 서로 자기가 하겠노라 배려하는 모습으로 버틴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퇴사 날 가까웠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감사했던 사람들에게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 간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잊어주십사, 마지막 모습은 좋게 가져가겠다는 전형적인 ‘마무리는 아름답게’ 전략.
사직원 제출을 하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퇴직 인사 메일을 보내자 고맙게도 전화가 쏟아졌다. 층을 옮겨가며 고마운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과는 커피를 한 잔씩 한다. 그간의 고생을 진심으로 치하해주며 격려해준다.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버텼지.
업무차 교류했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한다. 보통 어디로 가느냐가 주요 관심사. 딱 그 정도의 사이. 답변에는 나를 낮춘다. 굳이 마지막 모습을 강렬하게 남길 필요가 없다. "저는 뭐 어디 작은데 가요, 네 네, 건강하시고요." 따위의 주어와 직급만 바꾼 대사를 십수번 하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에 있던 내 짐들을 잔뜩 안고 일어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팀원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퇴근했다. 자칫 기분이 이상해질 뻔했으나, 퇴사 선배가 어떻게 알고 전화해준 덕분에 집까지 돌아가는 길에 엉뚱한 기분으로 빠지지 않았다. 그간 고생과 나의 결심을 응원하는 목소리 덕분에 이렇게 버텨왔구나 또 한번 깨닫는다. 다시 한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라며.
특히 가족만큼 시간을 같이 보냈던, 함께 일했던 소중한 팀원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대략 부족한 나와 함께 일해주어서 고맙고 미안하다 정도의 내용이지만, 쓰면서도 그간 동료이자 선배로서, 또는 사회인으로서의 내 태도를 잠깐 돌아볼 수 있었다.
아래는 나와 둘이서 호흡을 맞추던 사이드킥 같은 후배 직원 모모씨에게 쓴 편지이다. 이제 보니 사과와 반성으로 문장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대내적으로는 성실하지 못했나 보다. 이 자릴 빌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모모씨에게>
안녕하세요? 글로 인사를 전하자니 이상하네요. 늘 아침저녁으로 하는 인사인데, 의미를 담아 보내려니 괜히 마음이 싱숭합니다. 이별의 편지는 아니니, 괜히 분위기 잡지는 않을게요.
마무리하며 돌아본 회사 생활이 썩 훌륭하진 않아, 어쩌면 제 옆에서 가장 고생했을 모모씨에게는 직접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힘들고 지침을 빌미로 하여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고 외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도와주기보단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이미 완성된 모모씨라서, 과연 모모씨에게 저는 배울 점이 있는 선배였을까, 연장자였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회사와 일을 걷어내더라도 안정적이고 단단한 모모씨에게 도리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고쳐 말하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쉽게 보여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네요.
(중략)
모모씨께 아주 구정물을 부어버렸네요? 미안합니다. 시작과 끝을 사과로 시작하는 이 편지를 어찌 전달할까요.
지나간 고민과 고통은 미화되는 것이라, 문득 저를 떠올렸을 때 그저 사람 같은 동료였기를 바라봅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전달합니다.
모모씨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