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Oct 26. 2021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샤워하는 삶

땀쟁이 직장인의 한 맺힌 설움

나는 땀이 많다.


여름에는 늘 절인 파 마냥 흐늘흐늘거리고, 한겨울에도 조금만 걷거나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등과 이마가 땀으로 젖기 일쑤다. 덕분에 스타일링한 머리는 집에서 나오자마자부터 무용지물이 된다.


운동할 때는 더 하다. 흘긋 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뽀송한데 나 혼자 핫요가를 하는 것 마냥 온몸부터 얼굴까지 새빨개지고 땀은 실온에 놓인 얼린 물병처럼 주룩주룩 흐른다. 괜히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 서울의 지옥철이 내게는 곧 샤워시간과 같다. 특히 출근길은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지하철을 타러 가는 플랫폼에서부터 이미 땀이 나는 게 느껴진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 마음, 가는 길부터 기분 나빠지면 어떡하자는 건지.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아... 역시나 사람이 가득하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회사에서 애매하게 먼 걸까. 차라리 종점이었으면 앉아 갈 수라도 있지!'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집은 회사가 어디든 기본으로 편도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일터와 집이 가까운 사람은 그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구시렁대며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라 탄 지하철에서는 역에 설 때마다 왼쪽 문, 오른쪽 문 번갈아가며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점차 호떡처럼 납작해지는 내 몸뚱이를 보며, 추운 겨울에도 촉촉한 호떡 안이 그렇게 뜨거웠던 이유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열 받았다는 뜻이다.



Photo by Icons8 Team on Unsplash




이렇듯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샤워하는 삶이 지겨웠던 나는 한동안 자차로 출퇴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출근도 출근이지만, 이번엔 퇴근이 문제였다.

사무실 창 밖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길을 뚫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일부러 늦장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차 퇴근길 위 오른발은 브레이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지하철의 두 배가 걸려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칼퇴를 종교처럼 여기는 나라는 사람에게 자차 퇴근은 마치 세계관 붕괴와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미우나 고우나 다시 지하철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그 허무함.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잠깐 재택을 하던 기간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기 전이면 항상 속으로 빈다.


오늘은 제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기를!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원하고 개운한 바람이 느껴지면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 얌전히 서 있는다.(앉아서 가는 건 사치다) 겨우 지하철 안 온도가 어떻냐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내 삶이 시시하고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금세 또 현실을 받아들인다.




끝자락이더라도 어쨌든 서울에 위치한 본가로 인해 집에서는 자취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년간의 멀고 먼 출퇴근 길은 인간을 완전한 녹초로 만들었고, 잠시나마 회사 근처에서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곧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로 현재까지 쭉 본가 생활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역시나 '돈'인데, 본가에서 출퇴근하는 덕에 고정비 지출이 적은 게 컸다. 자취를 하게 되면 보증금뿐만 아니라 매달 월세, 관리비, 생활비 등 고정적인 비용 지출이 상당하다. 매달 수입은 정해져 있는데 지출만 늘어나는 상황을 꾸준히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이라는 고민도 한몫했다. 자기 객관화가 꽤나 잘 되어있는 나는 내 엉덩이가 남들보다 가볍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상태였고, 언제든지 양 손만으로 모든 짐을 챙겨 떠날 수 있도록 회사에는 항상 최소한의 물건만 둘 정도였다.


그런데 계약으로 묶인 자취방이라니. 역마살에 지배당한 나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 역시 캥거루 족도 나쁘지 않지.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캥거루가 좋았어'


합리화는 어렵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체 몇 살까지 지하철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살아야 할까?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실제 캥거루과 동물들은 늦어도 6개월에서 1년이면 배주머니에서 독립한다던데, 3n살인 나는 여전히 품 안에 있다. 성장기는 진작에 끝났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양분을 열심히 빨아먹으며 덩치만 무럭무럭 자란다.


그 와중에 머리만 커져서 독립적인 삶을 달라고 대든다.


사실은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지기 무서운 덩치만 큰 어린애 주제에 겉으로는 어른이 다 된 척한다. '주어지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를 좌우명으로 달고 있으면서 막상 땀 흘리며 열심히 사는 우리네가 괜히 가엽고 짠하다. 복잡한 생각에 괜스레 휩쓸려오는 우울을 손으로 내저어 본다.


뭐든 잘 될 거라는 억지 희망이라도 되새겨야 한 발 겨우 내딛을 수 있는 겁쟁이는 다시 한번 뽀송한 미래를 기대하고 다짐한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아니, 이 정도면 괜찮아. 너무 잘하고 있어.



만능 주문은 오늘도 어김없이 함께한다.







Photo by Greg Rosenk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안 맞는 옷을 입을 바엔 나체로 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