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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Oct 28. 2021

제가 그리 교양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습니다

경쟁하는 걸 원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를 이겨 깔아뭉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은 나와 맞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아하게 된 고사성어들이 있다.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마음을 썩임.

와신상담(臥薪嘗膽): 섶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의 맛을 보면서 원수 갚기를 잊지 않음.



... 그렇다. 회사는 날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햇병아리 사회 초년생 때는 누구나 그렇듯 굉장한 예스맨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 조차 없던 시기에 감히 어떻게 쉽게 '안됩니다'를 말할 수 있었겠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무리한 요구들이 정말 많았지만 그때는 주어진 일이라면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라고 외친 후 어떻게든 해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이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인류애를 당시의 나는 넘실대도록 가지고 있었다. 지극히 성선설에 기반한 태도로 타인을 대했고, 그게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순진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탄도 울고 갈 만큼 못된 회사 빌런들은 내 인류애를 온통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남은 부스러기마저 싹 털어가 버렸다.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내지 못함에 좌절과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무능력해서 그래.' 자책도 서슴없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 참 가혹했다. 그렇게 당연한 수순으로 마음의 병을 얻었다.


아, 이게 우울이구나. 이게 불안이구나.


모든 생각이 아주 작게 조각나버린 것 같았다. 전이라면 의식하지도 않고 행동할 수 있었던 모든 일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숨 들이쉬고 내쉬기, 숟가락 들고 밥 먹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같은 기본적인 일들도 할 수 없었다.


세상만사가 너무 복잡해 보였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계속 머릿속을 끊임없이 떠다니고 헤집으며 막연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말을 할 수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몇 달 동안 이유 없는 심한 기침에 시달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싶었던 순간, 내 인생 첫 번째 퇴사를 했다.



(퇴사의) 효과는 굉장했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던 기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나았고, 목소리도 점점 돌아왔다. 입맛이 생겼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쉽게 잇지 못했던 말에도 다시 속도가 붙었다. 매일 초점 없는 눈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하다 아주 오랜만에 나른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마치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바뀌어야만 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구나. 힘들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진정으로 날 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무조건 진심을 다 할 필요는 없는 거구나.'


그때부터였다.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을 마음에 새기고 소소한 복수에 눈 뜨기 시작한 것이.




당한 게 생기면 법과 규범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되갚아주었다. 상대에게 별 타격 없어 보이더라도 그렇게 해야 화병이 올라오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었다. 또다시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유퀴즈에도 출연하셨던 롯데주류 유꽃비 팀장님이 강연을 맡은 세바시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역시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을 정도로 복수의 양상은 흡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유꽃비 팀장님은 어떻게든 조직에서 버텼고, 난 그렇지 못했다는 것.


대단한 분!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순서가 틀렸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조삼모사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나'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고전 중의 고전인 만큼 정말 훌륭한 내용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 데일 카네기가 간과한 게 있다면 이런 부분이 아닐까.


그 책의 독자 중 많은 이들은 인간관계에 상처 받은 사람들일 것이며, 정작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빌런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된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런 책을 찾아 읽을 만큼 인간관계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전혀 없이 함부로 구는 사람에게 고상하고 우아하게 대함으로써 결국 원하는 대로 관계를 이끌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무례와 멸시에 웃는 얼굴로 대해야만 하는 속마음엔 얼마나 큰 응어리가 질까 싶다.


기분과 감정이라는 것이 항상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지만, 이놈의 사회는 아픔을 보살피고 정신을 수양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끝없이 우리를 몰아붙인다.


살기 위해서는 선택적 교양이 필수가 되는 시대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싶은 경우를 많이 본다.


근면 성실하고, 남을 배려하고, 착한 사람들은 늘 힘들어한다. 손해를 본다. 직설적으로 말해 곱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일명 '호구' 취급을 받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무례가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 바뀌라고 말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살래? 좀 약게 굴어."라며 조언하는 사회는 확실히 무언가 잘못됐다.


다수의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겨우 개인의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으로는 결국 거대한 짓누름을 감당할 수 없다. 모두가 빌런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내 머리로는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그냥 도망치고만 싶다.


이전 글에서도 한 번 언급한 적 있었지만, 바야흐로 '퇴사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몸 담은 직장을 떠나고 있다. 왠지 웅장하고 멋져 보이는 저 단어 뒤 실체에는 분명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 같은 직장인들이 있겠지.


아무튼 난 오늘도 빌런들의 세상에서 버티기 위해 선택적 교양이라는 무기를 꺼내 든다.



"제가 그리 교양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곱지만, 오는 말이 험하면 가는 말은 배로 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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