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잃어버린 노동자의 반성문
냄비근성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의 날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열심히 글 써보자고 시작했던 브런치도 3개월 동안 바짝 열정을 불사르는가 싶더니 요즘은 불씨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 참 냄비 중에서도 아주 싸구려 냄비인 게 분명하다.
이번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그간 해오던 취미들이 다시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딱히 회사 때문만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얄궂게 됐다. 퇴근 후나 휴일에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영상물을 보며 자다 깨다 하기 바빴고, 그것마저 질릴 때쯤에는 술을 마시며 무료함을 달랬다.(그나마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덕분에 건강은 잃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다. 자는 것마저 아까워 주말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주제에, 그 귀한 시간을 쉽게 허비해버리다니. 출근이 다가올 때쯤이면 지난 게으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 정작 자야 할 시간엔 쉽게 잠들지 못하곤 한다.
일을 제외하고는 뭘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진득하니 시간을 쏟아야 하는 그 무엇도 귀찮다. 해봤자 고작 2시간 내외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싫어졌으니 말 다했지. 책?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덮어버리고 싶어 진다. 서점의 온갖 코너를 돌아다니며 골라온 책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난 왜 이렇게 됐을까? 애초에 내 열정은 바닥이 새카맣게 타버린 냄비 정도였나.
취미라고 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보여주기 식이였던 걸까.
아니면 지금 내 마음에 그만큼의 여유도 존재하지 않는 건가.
깊게 생각하기가 싫어 한동안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글은 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준다. 머릿속 떠다니는 온갖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어 재배열한다. 오랜만에 꺼낸 키보드의 촉감이 새삼스럽다.
주변 사람들 몇에게도 오늘 반드시 글을 쓸 것이다 사뭇 비장하게 알렸더니, 어떤 내용의 글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이제부터 생각해 볼 것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브런치에 올려야지 하고 휴대폰 메모장에 마구잡이로 적어놓은 초안들은 여러 개 있다. 하지만 그 글들을 지금 쓰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를 켜고, 글 쓰기 버튼을 누른 뒤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면 뭐라도 적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도 이렇게 글이 나오긴 한다. 알맹이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죄짓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으니까.
무기력증을 핑계로 대고 싶진 않다. 회사 생활이 정신없다는 것도 일종의 변명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치하지 않았어야 했다. 다시 나만의 궤도에 정상 안착해야 한다. 즐겨 듣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가득 담고 틀어놓았다. 그래,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개인의 취향과 취미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공감되는 이야기다. - 솔직히 난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에게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설명해야 할 때, 취향과 취미를 말하는 것만큼 편한 게 있을까. 발견되는 공통분모와 맥락에서 나라는 사람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 차리자. 잃어버린 취미들도 되찾고, 새로운 취미도 찾아보자. 냄비에서 돌솥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지.
날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마음을 새로 먹을 기분이 난다. 잠시 겨울잠을 잤다고 생각하고, 이번 겨울은 확실하게 대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