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2000. 9. 3. 일요일>
인삼의 고장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금산.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인 금산은 매년 가을 초입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삼을 주제로 한 '금산 인삼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1981년부터 시작해 약 40년여간 이어진 이 축제는 무려 8년 연속 세계축제협회(IFEA)의 피너클 어워드를 수상할 정도로 다채로운 볼거리와 참여할 거리가 넘친다. 또 이 기간만큼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기고, 금산인삼을 알리는 데 동참한다.
금산으로 이사를 하고 처음 맞는 가을, 같은 반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던 축제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조용하던 도시가 밤낮 할 것 없이 화려한 불빛으로 수 놓이고, 골목마다 구수한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흥겨운 대화 소리가 뒤섞여 끊이질 않는다. 각설이 주변으로 사람들은 둥그렇게 앉아 공연을 보고, 운이 좋게 눈에 띄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공짜로 엿 한 상자를 얻어갈 수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인삼축제가 한 달 정도 남은 어느 종례시간.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인삼 어린이 왕 선발대회에 나가고 싶은 사람?" 하고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인삼 어린이 왕 선발대회.' 이름만 들어도 촌스러운 이 대회는, 인삼같이 뽀얀 어린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팬티 한 장 입고 장기자랑을 하는 그런 대회였다. 인삼축제를 기획했던 주최 측에서는 건강한 아이들을 통해 (인삼을 연상시키며) 금산 인삼을 홍보하려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거기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관심은 오직 우승 상품인 자전거에 있었다.
사실 내가 손 들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이미 2번이나 이 대회에 나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해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이 "대회에 나가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 하시기에 얼떨결에 손을 드는 바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또래보다 왜소했던 4학년 어린이가 눈에 잘 뜨일 리 없었다. 아직 덜 자란 4년 근 인삼 같은 처지였다고 할까. 두 번째 해에는 그동안 대회에서 5학년이 계속 우승을 해왔으니 '이번에 나가면 수상할 가능성이 높겠지' 하고 대회에 나갔다. 그 대회에서도 5학년이 우승한 건 맞았지만, 자전거를 타간 건 내가 아닌 다른 친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6학년 형아씩이나 돼서 팬티만 입고 남들 앞에 선다는 게 괜히 창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우승 상품인 자전거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참가 신청을 했고, 대회에 참가하는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서 선보일 것들을 연습했다. 경험이 있었던 탓에 많은 것들을 익숙하게 해내자 대회를 준비 시키는 분이 나에게 따로 와서 '작년에는 어떻게 했었지?'하며 조언을 구할 정도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친구들이 준비하는 개인 장기 자랑을 보며 속으로 콧 방귀를 뀌었는데, 인삼 축제의 취지를 잊고 우리끼리나 이해하는 개그를 준비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대회 당일, 누구보다 익숙하게 무대를 걸었고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수상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시간, 개인 장기자랑 시간이 왔다. 친구들은 준비한 대로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춤을 췄다. 또 누구는 우스꽝 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각설이가 하는 품바 타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오니 일월이 송송 해송송 밤중 샛별이 완연하다~~"
사람들은 처음에 무슨 노래인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같이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축제 때마다 오는 각설이의 타령 소리가 모두에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마치고, 사회자가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에 "금산 인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대답한 뒤 준비해온 멘트를 이어갔다.
"지금부터 천오백 년 전, 강 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렇게 빨간 열매가 세 개 달린 풀의 뿌리를 달여 드리니 모친의 병이 완쾌되었고 그때부터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역사를 가진 우리 고장 금산의 인삼이 최고입니다!"
준비한 모든 무대가 끝나고 시상식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모여있던 우리는 저마다 누가 우승할 것 같은지 얘기하고 있었다. 누구도 내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대부분 큰 웃음을 줬던 친구 OO이 우승을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질 때쯤, 시상식을 위해 다시 모두가 무대로 올랐다. 긴장되는 순간, 브레이크 댄스를 추다 무대에서 벌러덩 넘어진 친구가 인기상을 받았고, 우리 중에 체격이 가장 다부졌던 친구는 우수상을 탔다. 대상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었을 때, 갑자기 우승 상품인 저 자전거가 내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대상에 내 이름이 불렸다!
관객석 한편에서 응원하고 있던 엄마와 함께 상품으로 받은 자전거를 끌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새 자전거를 타고 한참 동안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세 번 만에 우승, 내가 인삼 어린이 왕이라니!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동네를 돌았던 그날 이후로, 나는 안타깝게도 까불거리던 어린이에서 갑자기 성숙하게 된 것 같다. 더 이상 팬티만 입고 남들 앞에 서는 일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이 정해준 정답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같은 대회에 3번째 나가면서, 친구들은 낄낄 거리며 장기자랑을 준비할 때 나는 심사위원들이 어떤 것들을 좋게 보는지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으려 축제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만한 각설이 타령을 부르고, 인삼축제의 취지에 맞춰 인삼의 유래를 읊으며 홍보했다. 그러고는 폐막식에도 초대되어 금산 군수, 그리고 인삼아가씨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어린 나이에는 좋지 않은,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날 어른들이, 그냥 한 없이 까불거리고 재기 발랄한 친구들에게 상을 줬다면 이후에 내 생각이 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파티의 모든 것(https://cafe.naver.com/bestpeoplemc/6185)
옛드:MBC 레전드 드라마(https://youtu.be/IbSwPpD8Its)
금산축제관광재단(http://www.insamfestival.co.kr/html/kr/sub2/sub2_020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