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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난감공장 May 04. 2022

나는 너희보다 평행봉은 잘해

<열일곱 살, 2004. 10. 12. 화요일>


  중학교 3학년 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으로 유학(遊學)을 결심했다. 막연히 공부를 잘하는 학교에 가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에는 고향에 남아 내신 성적으로 대학을 가려는 친구들과 소위 지역 명문고에 가서 수능에 집중하려는 친구들로 나뉘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운 좋게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이라는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시험을 보고 받은 성적은 말 그대로 형편없었다. 고향을 떠나온 것을 후회할 새도 없이 그다음 시험에서도, 또 그다음 시험에서도 성적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공부깨나 한다는 친구들이 모여 있어서 좋은 성적을 얻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좌절하게 될지는 몰랐다.



  자연스럽게 공부는 뒷전이 되어갔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모여 실없는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교실에 잔디를 키우기도 했고, 다 같이 삭발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우리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누가 봐도 주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 생활도 무너져갔다. 벌점은 턱끝까지 쌓였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늦은 밤 기숙사를 탈출해 바깥바람을 쐬고 온 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짐을 쌌다.



  교실에 앉아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나와 친구들은 운동장 구석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평행봉 서너 개가 있었다. 불빛도 잘 비추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는 평행봉을 열심히 흔들어댔다. 교실에 있는 친구들이 공부를 할 때, 거기에 모인 친구들은 평행봉을 한 개라도 더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주변에서는 그런 우리를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컴컴한 구석에서 거친 숨소리만 내뱉는 녀석들에게 붙여진 조롱 섞인 별명이었다. 우리는 애써 그런 시선들을 외면했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질수록 더 평행봉 주면으로만 모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너희보다 공부는 못해도, 평행봉은 더 잘해.


  공부를 하러 유학 온 학생들이 책 대신 평행봉을 붙잡고 있는 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또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괜스레 질투할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느끼면서도 누구도 운동장 구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평행봉 위에서 반동을 시작하면 몸이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너희보다 평행봉은 더 잘해'라는 잘못된 생각의 관성을 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평행봉에 매달려 있는데 친구 하나가 불쑥 찾아왔다. 모범생 K였다. K는 대뜸 "나도 평행봉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운동에는 영 취미가 없어 보이는 녀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같이 평행봉에 올랐다. 발을 구르며 팔에 힘을 주라고 말하는데 K는 엉성한 자세로 몇 번 몸을 흔들어 보더니 이내 어색해하며 평행봉에서 내려왔다.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생각하는데, K는


"남이 하는 걸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무척 어렵네. 대단하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친구의 그 한마디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손가락질을 하는 대신 평행봉을 하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인정해준 것은 K가 처음이었다.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 냈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실패를 느껴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친구들을 괜히 시샘하고 나는 평행봉을 잘한다고 소리친 것 같다. 이제 멍청한 짓들은 그만하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며칠 후, 나는 운동장 구석으로 가는 대신 수학책 한 권을 들고 친구 K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K가 평행봉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친구는 망설임 없이 "물론이지" 대답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책의 처음부터 최근에 배운 내용까지 천천히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장 구석에서 다시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교실에는 항상 K가 있었고 내 손의 굳은 살은 옅어지고 있었다.






  요새도 K와 만날 때면 그때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둠의 자식이란 별명을 버리고 다시 교실로 올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K는 항상 멋쩍게 웃으며 누구나 잠시 방황하는 시간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존감을 놓지 않는다면 언제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더한다.



  친구의 말처럼 고등학교 때 나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평행봉에 매달렸다. 남들 눈에는 방황을 하는 시기로 보였겠지만,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그 시기를 지배했다면 학교를 그만두거나,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그마한 자존감을 지켜낸 덕분에 그 시기를 견디고 교실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운동장 구석에서 지냈던 시간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 때 자신만의 평행봉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대입, 취업, 펀딩 같이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경쟁을 치러내기 위해 자존감을 지킬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자존감 지키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우리 애는 공부는 좀 못해도 성격이 좋아' 하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시지 않았는가. 그러니 굳이 지금 서 있는 길에서 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무너져버릴 이유가 없다. 힘든 시기일수록 자신이 잘하는 일을 떠올리고 언제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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