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두 살, 2009. 6. 2. 화요일 >
< 스물두 살, 2009. 6. 2. 화요일 >
#성공 #준비 #내공 쌓기
#남들과 경쟁에서 뒤처졌을 때
대학시절 지루하던 생활에 활력소가 되던 것은 일주에 한 번 열리던 특강이었다. 주로 한 분야에서 성공한 분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그 날 만큼은 닫혔던 머리가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졸업을 위해 151학점을 이수해야 할 정도로 빡빡한 학교 생활이었지만 특강만큼은 빠지지 않고 꼭 참석했다.
대부분의 강연이 재미있었지만 특히 두 명의 강사가 기억에 남는다. 한 분은 모 방송국 PD 출신의 강사였다. 그는 살아온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마지막에 "여러분, 성공하려면 손을 잘 씻어야 합니다"하며 다소 엉뚱하게 마무리를 했다.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늘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참신한 방법 덕분에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를 기억한다. 특히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보니, 사실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강의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손 씻기를 강조한 강사와는 다른 의미로 기억되는 강사가 있다. 그분은 S그룹 출신이었다. 얼마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첫 번째 행선지로 선택한 그 기업에서 꽤 오랜 시간 일한 분이었다. 강의 초반 사업 성공을 에베레스트 등반에 빗대어 설명한 내용은 다소 진부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성공에 관한 아주 간단한 메시를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성공한 기업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장 먼저 도달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은 아주 신선했다.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해발 8,848미터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등반을 시작하는 곳인 루클라 공항은 해발 2,800미터이다. 따라서 올라가야 하는 높이는 6,048미터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숨은 비밀이 있다. 바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하는 베이스캠프의 위치이다. 높은 산을 등반할 때 베이스캠프는 휴식과 함께 정상까지 도달할 재정비 시간을 제공한다. 따라서 실제로 등반팀이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올라야 하는 거리는 베이스캠프부터 꼭대기까지가 된다. 결국, 베이스캠프를 높은 위치에 설치할수록 남들보다 먼저, 쉽게 정상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기업과 같은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는 의미는 제품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연구 인력을 늘려 혁신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것, 또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 그동안의 프로젝트 노하우를 잘 정리하는 것이 해당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팀에게 회사가 가진 기술력, 기존 고객과의 강한 네트워크는 훌륭한 베이스캠프이다.
이 전략은 비단 기업의 성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 스타들에게서도 이 전략이 성공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이 된 손흥민 선수나, 세계 최정상의 양궁 국가대표팀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이뤄낸 업적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한 것에 빗대어도 손색이 없다. 그들의 베이스캠프는 무엇이었을까?
손흥민 선수는 이미 득점왕이 되기 전 지난 시즌까지 토트넘에서 총 280경기에 출전해 107골을 넣으며 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손흥민 선수의 훈련량과 경험을 언급하며 득점왕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대회 우승보다 더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까지 축적해온 해외 리그에서의 경험, 경쟁 상대보다 월등히 많은 훈련량이 그들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세계 일류를 목표로 나아가는 삶은 흔치 않다.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나지막한 뒷산에 오르는 것 같이 아주 소소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나의 베이스캠프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추월당하는 순간이 그렇다. 부서로 새로 전입 온 동료가 나보다 큰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고, 심지어 후배가 나보다 먼저 승진을 하기도 한다. 질투심이 열등감으로 발전하려 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서로의 베이스캠프 위치를 확인해본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그들이 나를 앞지르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들이 실력과 경험을 쌓으며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꾸릴 동안 나는 뒷동산을 오르는 듯한 마음가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 베이스캠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본다. 미뤄 왔던 외국어 공부나 직무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들을 준비한다. 동시에 나만의 강점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산을 오르다 넘어진 것처럼, 그동안의 수많은 실수들 속에서 배울 점을 발견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흔들리지 않고 버텨낸 단단한 마음이 보인다. 남들보다 늦어져도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희망적인 건 아직 등반을 해야 할 산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차근차근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