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칠 줄 모르는 사람이 콘서트를 하는 방법

< 열아홉 살, 2006. 12. 9. 토요일 >

by 장난감공장

< 열아홉 살, 2006. 12. 9. 토요일 >

#완벽대 대한 집착 #스스로 정한 한계 #일단 시작

#무작정 저지를 용기가 필요할 때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취미는 베이스(Bass) 기타였다. 지금은 기타 줄이 네 개인지 다섯 개 인지도 헷갈리지만 단독 콘서트까지 마친 그룹의 베이시스트였다. 베이스를 시작한 것은 중저음의 울림 때문도, 멋진 솔로 연주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콘서트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스 기타를 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콘서트라니? 처음 연습실에 갔을 때 원장님이 보인 반응이었다. 저녁을 먹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거리에 걸린 'OO여고 졸업 공연'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찾아간 공연장은 무대 위의 밴드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우리 또래가 보여주는 공연은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단조롭던 고등학교 생활에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나도 그 무대에 서보고 싶었다.



콘서트를 하겠다는 내 계획을 같은 하숙집에 살던 친구 S에게 이야기했다. 매일 노래를 흥얼거리며 같이 등교하던 친구였기에 단번에 통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어보았다. 밴드와 가수, 악기, 장소, 그리고 관객. 참 간단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것 중 어느 것도 가진 게 없었다.






먼저 팀을 꾸려야 했다. 연습실에서 만난 다른 학교 친구가 현란하게 기타를 치고 있기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이야기했다. '같이 밴드 해보지 않을래?' 그 친구는 당황하며 '어, 그래..' 대답했다. 퍼스트 기타 완료. 힙합을 좋아하는 옆자리 짝꿍에게 물었다. '기타 좀 치니?' 그렇다는 말에 '코드 좀 잡아주라' 얘기했다. 세컨드 기타 완료. 드러머를 찾아 학교를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나 만나면 드럼을 좀 칠 줄 아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후배 한 명이 걸려들었다. '네가 필요해'하며 저녁을 사주고 영입했다. 드럼 완료. 멤버가 구성되었을 때, 우리는 영한사전을 아무 곳이나 펼쳐 싸이키델릭(Psychidelic)이라는 밴드 이름을 정했다.



그다음은 악기가 필요했다.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개인 악기가 있었다. 연습실에 있는 베이스를 빌릴까 했지만 왠지 폼이 나지 않았다. 그때 연습실 구석에 놓인 베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OO여고 졸업 공연’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학생이 대학에 가며 두고 간 베이스였다. 연락이 닿아 사정을 이야기하니, 흔쾌히 그 베이스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이제 제법 구색이 갖춰졌다. 우리는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하나씩 정했고, 수능 준비를 하는 동안 시간을 쪼개 곡들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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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공연 날짜를 정했다. 12월 9일, 정확히 1년 전 OO여고 졸업 공연이 있었던 그 공연장이 비어있는 어느 주말이었다. 그때부터 문제는 돈이었다. 계약금은 내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치렀지만, 대관료며 홍보 전단지 제작, 음향장비를 담당할 감독을 섭외하는 것에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가게에 들어가 협찬을 받자고 했다. 공연 전단지를 1,000부 정도 인쇄할 예정이니, 그곳에 홍보를 해주겠다고 했다. 일종의 광고료였다. 그렇게 부족한 비용이 모두 충당되고, 드디어 홍보 전단지가 만들어졌다.



대망의 공연 날, 좁은 공연장은 그 밖까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모두가 일어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1년 전 꿈에 그리던 콘서트가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악기도 연주할 줄 모르던 무자격자의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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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회사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로 해외 석사 교육이 열렸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열정이 끓어 넘쳤다. 데이터로 일 한지 십 년이 가까웠는데도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해외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선발 공고를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졌다.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데다가 학부 때 전공이 정치학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해외에 나가 새로운 분야를, 그것도 영어로 공부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도, TOEFL이며 GRE 같은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또 어린 자녀를 데리고 해외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모두 지원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냥 한 번 해봐, 다 할 수 있어."


콘서트를 함께한 친구 S가 해준 말이었다. 악기도 없이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했는데, 해외 유학이라고 못할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다 방법이 있다. 그깟 영어점수, 학부 때 전공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거냐는 일침을 더했다.



친구의 말대로 고등학교 때 콘서트를 준비하던 것을 떠올리며 유학을 결심했다. 그때는 악기도 없었지만, 지금은 노트북이라도 있지 않는가. 결국 교육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해외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게 되었다. 첫 학기에는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헤맸지만 지금은 제법 즐겁게 공부하고 연구도 하고 있다.






우리는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충족되지 못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아쉽다. 완벽한 준비라는 게 있을까 생각해본다. 자리가 요구하는 자격이라는 것도 사실 모호하다. 문과 출신으로 개발자가 되고, 직장을 다니다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코딩 실력을 바둑처럼 급수로 나눌 수도 없고, 새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내 성공적인 이직을 100%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해외 영업직을 꿈꾸면서 영어 점수도 없이 입사 지원서를 제출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그게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면 일단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어느 유명한 동시통역사는 본인의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33,000 단어가 적힌 책을 모조리 외웠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을 외우지 못했다고 그 직업에 도전할 기회를 잃는 건 아니다. 또 해외 유학 경험이 통역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만 살았다고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다면 제 자리에서 세 바퀴를 회전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하는 대신 빙상장에 먼저 가보고, 가수가 되고 싶다면 보컬 레슨을 받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보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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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 한 번 써보지 않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내고 작가가 되신 분들께, 작가 신청서를 제출하시던 그날의 용기를 다시 한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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