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에 치이고 일이 잘 풀리지 않던 날이었다. 다음 날 있을 회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퇴근할 수 있었다. 멍한 상태로 주차장에 도착할 때쯤 문득 친구 Y가 추천해준 영상이 생각났다. 힘들 때 꼭 들어보라는 유명 강사의 강연이었다.
잠시 차에 앉아 Y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보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강사는 사람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나갔다. 일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던 나에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조언했다. 내 하루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강사가 하는 이야기는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집에 가서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도 강연은 이어졌다. 신기하게 내가 찾은 강연과 비슷한 내용을 끊임없이 추천해주었다. 심지어 다음 강연을 찾지 않아도 자동으로 영상을 재생해주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다. 힘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한번 쉬어 가라고, 그래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이 나를 깊은 잠으로 밀어 넣었다.
밤새 틀어놓은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지각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출근했다. 멋쩍게 사무실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눈치를 줬다. 부서장님이 회의자료를 찾으신다고 이야기했다. 허둥지둥 컴퓨터를 켜는데 이상하게 버벅거렸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어제보다 좋지 않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편리하고, 신기하다. 검색어와 동영상 시청 시간, 좋아요를 누른 숫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을 고려해 다음 영상을 추천한다.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것을 소셜미디어 회사의 탐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사용자들을 최대한 자신들의 플랫폼에 붙잡아 두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추천되는 콘텐츠가 미치는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조금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용자들을 이끈다는 감정을 지울 순 없다. 마치 응원받고 싶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추천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약을 준다. 항생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항암제를 주는 것 같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마약성 진통제를 주는 것 같다. 마음에 가벼운 염증이 생겨 그것을 찾으니 처음에는 삶을 위로해주는 영상을 추천해 준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주 세고, 중독성이 강한 진통제를 계속 보여준다.
이런 유의 진통제 같은 강연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삶이 괴로워 당장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떠한 상담보다도 의미 있을 수 있다. 나 역시도 사람 관계가 정말 힘들어 몸도 마음도 통제가 되지 않았을 때 평소 좋아하던 강사의 강연을 찾아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정도로 강한 치료제가 필요하지 않다. 가벼운 감기를 앓고 나면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처럼, 정말 힘든 순간을 넘길 만큼의 해열제만 필요한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어간다. 그리고 결심한 일이 실패했을 때 그동안 들인 정성이 날아가는 가슴 아픈 순간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달콤한 속삭임, 그 알고리즘의 유혹에 금방 넘어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이 소중하고, 심지어 다음 날에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은 그럴싸하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안타깝지만 그 말대로 행동한 결과는 오롯이 내 책임이 된다.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한다. 퇴사를 마음먹었다면 다음 계획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처럼 급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투자 수익을 내려고 해도 끊임없이 조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직장생활과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지는 게 사람 관계라고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누가 내 마음속 외침을 알아줄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불편하더라도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가끔씩 삶에 지칠 때면 마음을 위로해주는 강연을 찾아 듣는다. 습관처럼 그것을 찾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으면 불편했던 세상이 잠시 조용해진다. 세상과 단절된 그 시간 동안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본다. 공감을 받고, 위로받는 시간이 좋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다음 영상으로 제멋대로 넘어가게 두지 않는다. 과한 위로는 '고맙지만,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차라리 그걸 이뤄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또 한 가지. 당장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절대 괜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