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살, 2022. 2. 24. 목요일>
가족들과 함께 근교로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기차 안, 친구 L에게 별일 없냐는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일까 잠깐 고민하다 답장을 하니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이상하길래 물어보니 "나 코로나 걸렸어." 하고 웃는데 머쓱해하는 표정이 전화기 너머로 전달됐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놀다가 그런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일요일에 아버지가 뇌경색을 일으키셔 새벽에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 갔는데, 치료는 잘 되셨지만 후유증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아이를 봐주고 계시던 어머니가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그 바람에 장모님께 급하게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지 연락을 드리니, 그동안 지병이 있으셨음을 밝히시며 서울에 가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계신 곳에서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장모님 댁으로 내려보낼 준비를 하는데 친구 L은 직장에서 코로나에 감염됐고, 격리를 하는 바람에 아이도 보지 못하고 이별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은 코로나 증상이 심해 거의 며칠을 앓아누웠다가 몸이 조금 좋아져서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을까 싶었다. 본인도 아프지만 이유도 모르고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를 보며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마땅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아이를 처가댁에 맡긴 적이 있었다. 주말에 내려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에 올라와야 할 때가 되면 아이가 울까 봐 낮잠을 재우고 도망치듯이 나왔다. 새근거리며 자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 서울로 올라갈 때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그리고 마비 증상이 있으신데도 본인은 멀쩡하다며 병원 가기를 거부하셨다던 L의 아버지의 모습에, 기침이 심해지시는데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내 아버지를 생각해봤다.
전화를 끊으며 '이제 우리도 이런 일들을 겪을 나이잖아.' 하는 친구의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오랜만에 친구의 부모님을 뵈면 작아지시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이셨다. 어떤 친구의 아이는 많이 아프고, 어떤 친구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연락이 어렵다. 직장 때문에 주말에만 가족들을 만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다들 어렸을 때는 몰랐을 어려움 하나씩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어려움에 좌절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부모님이 아프시고, 아이와 이별하고, 내 몸이 불편해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행복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이 현실마저 서글프지만 예전에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소중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뿐이다.
친구에게 입 맛이 없어도 밥 잘 먹고 부지런히 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여행의 피로로 지쳐 잠이 든 아이를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그 옆에 누워 숨소리를 들어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속삭인다. "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 아빠가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어."
사진출처 : Progressive Railroading(https://www.progressiverailroading.com/ptc/news/NJ-Transit-will-meet-PTC-deadline-CEO-says--6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