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 2021. 8. 14. 토요일>
가족들끼리 만나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낸 다음 날, 거실에 널브러져 자던 친구와 나는 두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에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바로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먼저 일어나 있던 아내들이 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아이들과 놀아주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먹을 것을 좀 사 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 거리와 커피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무래도 친구의 걸음걸이가 이상해 물었더니 통풍이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잠시 병원에 들러 약을 좀 받아가자고 했다. 한 달 전쯤 전화가 와서 '지난번에 네가 갔던 통풍 병원이 어디였지?'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통풍에 먼저 걸려본 선배로서 그 고통을 알기에 이것저것 조언을 해줬었다. '맥주 마시지 말고, 치킨 같이 튀긴 음식은 피하는 게 좋아.'
절뚝거리며 걷는 친구를 부축해 병원까지 가서 접수하고,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물었다.
"너는 약 안 받아도 괜찮아?"
"그럼, 나는 이제 통풍 다 나았어."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통풍이 처음 오던 날 걷지도 못해 거의 기어가다시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한 봉지 받아왔었다. 그 후로도 한참을 고생했고, 통풍에 좋지 않다는 음식은 피해왔었다. 그런데 어제는 증상이 사라진 지 꽤 되어서인지, 분위기가 좋아서였는지 치킨과 맥주를 신나게 먹었다. 친구가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얼른 돌아가자" 했을 때 나는 "잠시만"하고 접수대로 갔다. 저도 진료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니 아내들은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이들을 보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뭐하다가 늦게 왔냐며 우리에게 한 마디 하려는 순간 친구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약봉지를 내밀었다. 그게 뭐냐고 쏘아붙이기에 둘은 "통풍약..."하고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절뚝 걸이며 한 손에 약봉지와 다른 손에 커피, 해장국을 들고 서 있는 두 남자를 보고 아내들도 실소했다.
식사를 하다 예전 같이 밤 새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는 체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무 살 중반쯤엔 같이 제주도에 가서 거의 무박 3일로 여행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요새는 자정을 넘기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나는 조금만 늦게까지 야근하면 다음 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아."
"예전에는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요새는 살려고 운동하는 것 같아."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나도 "요새는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는 게 아니라 관절이 아픈 것 같다"는 말을 더하려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는 온몸의 관절이 시리다"는 얘기를 하기에 괜히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가서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였다. 밤새 놀지 못해도 가끔씩 이렇게 만나 서로 건강한지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진출처 : Delicious (https://www.delicious.com.au/recipes/korean-chimaek-recipe/0msm6u5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