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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난감공장 Mar 07. 2022

들어갈 땐 쪽문으로, 나올 땐 정문으로

<열아홉 살, 2006. 2. 16. 목요일>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친구 S는 어김없이 닭꼬치 한 봉지를 들고 나를 마중 나왔다.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친구~ 오늘은 할 만했어?"

  "그냥 하는 거지 뭐" 나는 언제나 똑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도 야간 자율학습 안 온 거야?" 하고 물으면

  "가서 뭐해~" 친구도 늘 똑같이 대답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친구 S는 나와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했다. 1학년 때부터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뭔가 남달랐다. 신입생 환영회 때 크라잉넛의 '고물 라디오'를 목청 터져라 부르는 모습에서 딱 알 수 있었다.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닌데,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해 보이는 친구였다.


  나는 항상 친구 S와 같이 등교했다. 자고 있는 친구를 깨우고 나서 아무 책이나 가방에 욱여넣고 나면 등교 준비 끝이었다. 학교 정문까지 3분밖에 되지 않는 그 길을 둘이서 어슬렁 거리며 걸어갔다. 가는 길에 노래도 좀 불러보고, 혹시 새로운 게 없나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멀쩡한 정문을 놔두고 꼭 쪽문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0교시, 그리고 이어지는 수업시간 동안 친구들은 잠과 씨름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누구는 엎어져 자기도 하고, 누구는 잠을 깨려 일어났다가 서서 졸았다. 서로의 모습이 안타까워 자는 친구가 있으면 옆자리 친구가 깨워주기도 했다. 그래도 잠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친구들이 눈을 번쩍 뜨는 시간은 점심시간과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 한 겨울에 창문을 다 열어서 환기시키라고 할 때뿐이었다.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친구 S가 자율학습 시간에 졸고 있길래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친구는 눈을 슬며시 뜨더니 교탁에 앉아계신 선생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하려나 싶었던 순간,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제일 뒷자리로 가서 교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자율학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실컷 자다가 종이 울리자 일어났다. 난 그때 알았다. 이 친구도 뭔가 많이 지쳐있구나.



  사실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다 뿐이지, 나 역시도 바닥에 머무르는 성적 때문에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져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향을 떠나 유학을 왔지만, 고3이 되어서도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차라리 친구 S처럼 잠이라도 시원하게 잤으면 핑계라도 있을 텐데, 내 부진한 성적은 그 이유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공부했다. 그런 현실이 더욱더 나를 좌절하게 했다.






  아직 밤에는 많이 쌀쌀하던 그날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친구 S가 운동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환하게 켜져 있는 학교 불빛이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 때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우리 정문으로 나갈까?"


  왜 늘 다니던 쪽문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려 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들어올 땐 쪽문으로 들어왔더라도, 나갈 때는 어깨 펴고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가야지!"


  가벼운 웃음이 나며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문으로 나가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꼭 성적 때문에 주눅이 들어 쪽문으로 다닌 건 아니었지만, 무사히 하루를 마친 우리가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 이후로도 둘은 항상 학교에 갈 때는 꼴찌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쪽문으로, 나갈 때는 졸음과 사투하던 하루였을지라도 허리를 펴고 정문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 행동이 나에게 신기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정문을 나올 때마다 열심히 살아낸 하루를 스스로에게 각인했다. 그동안 들였던 노력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 덕분일까? 정문으로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쯤 제자리걸음이었던 성적이 조금 올랐다. 정문을 통해 하교하는 날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성적은 점점 오르기 시작해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었고,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불안하기만 한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목표한 시간은 가까워져 오는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변화가 없는 삶은 마치 바다 한 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누구라도 '네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 목표까지 얼만큼 남았으니 조금만 힘을 내라'고 말해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누가 내 삶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줄까. 그럴때는 스스로 노력을 인정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행동 하나쯤은 가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음 먹은 목표를 큰 소리로 되내여 보아도 좋고, 다이어리에 칭찬 스티커 하나쯤 붙여보는 것도 좋겠다. 누구는 미신, 또는 징크스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불확실한 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는 그 노력을 인정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친구 S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누구보다 많은 성취를 이루며 당당하게 살고 있다. 목표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하며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삶의 여유를 잃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힘들면 노래를 흥얼거렸고,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낸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 이제는 정문을 통해 하교할 일이 없어졌는데, 그 친구의 새로운 '자존감을 높이는 의식'은 무엇일까?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날 나를 정문으로 나가게 이끌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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