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천, 점점 착해지는 홍상수 영화

by 황인석

홍상수 감독 영화는 점점 더 착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착해지기가 쉬운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집착보다는, 가을에 그런 것처럼 약해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연민이 늘어난다. 더군다나, 홍상수 감독의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함께 있지 않은가.


예전의 홍상수 감독 영화 주인공들은 속물스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본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불쾌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 속물적인 모습들이 혐오스럽다기보다는 귀여운 쪽이라고 느껴 왔었지만, 이번에 개봉한 수유천 같은 경우엔 그런 속물적인 요소들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홍 감독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김민희 배우를 만난 이후의 영화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큰 고통을 받고 고통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선 속물성이 두드러진 테마가 되기 어렵다.


'수유천'에서 느껴지는 것 중 일부는 고통과 공허이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은 진실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하고, 심지어 그것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권해효는 그런 장면들 속에서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한다. 모여 앉은 세 명의 사람들은 가을의 풍경이, 장어 맛이, 지금 이 시간이 좋다는 말을 계속 한다. 그 좋다는 말은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메꾸려는 추임새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빈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근원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을 찾기 위해 계속 묻고, 하루에 20 cm 씩 계속 패턴을 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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