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 무엇인가?

인식과 반응의 문턱에서 잠시 멈추어 얻는 자유

by 황인석

노자 도덕경 1장에는 도에 대한 정의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첫 문장에서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고 선언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나는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도란 항상 변함 없는 자연법칙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엄연하게 객관적인 법칙과 인과관계들이 존재하는 데 항상 그러한 도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내 생각에 도란 자연법칙과 같은 것이라기보다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항구적인 기준이나 법칙이 존해하는 것은 아니다는 정도의 뜻이 아닐까?

어느 일본인이 쓴 책에서는 도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고, 도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도덕경에서 제시하는 ‘명(名)’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해석한 세계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런 풀이도 좋은 것 같다.

뇌과학의 지식들도 비슷한 함의를 갖는데, 인간이 인지하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인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의 참 모습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지만, 그 세계의 신호들이 우리에게 인지된다. 우리 유전자 안에 프로그래밍된 구조들을 기반으로 경험을 통해 학습한 모델들을 통해 이 신호들이 해석되고 세계의 상이 재구성된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세계의 모습은 세계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한 세계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서로 연결이 된다. 우리의 세계상이 해석의 결과물이라면, 그 모습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는다. 즉, 우리가 보는 세상이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그대로 비춘다면 그 모습은 고정되어 있고 불변하지만, 그 세상이 해석된 세상이라고 하면 우리의 해석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변화의 가능성도 풍부한 세계상이 구성될 수 있다. 우리의 뇌가 하는 일이 세상의 신호들을 해석하고, 세계상을 구축하고, 그에 기반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해석의 다양성은 그에 기반한 행동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즉, 불변하는 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을 통해 유연한 도의 궤도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이 자유의지에 의존하는 의식적 과정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으로 대상을 보고 대상에 대한 시각적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우리가 의식적인 관여를 통해 변경할 수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의식적 과정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여러 가지 연상을 하고 시사점을 도출하고 평가와 판단을 내린다. 이런 과정들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의식의 관여를 일부 받으며,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그런 과정들을 바라보고 평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한 상태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경험은 그 자체로 멈추지 않는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만난 상대와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인지 모델에 반영하게 된다. 즉, 누군가와 불쾌하게 보낸 시간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즐겁지 않다는 인식을 하면서 그것을 일종의 지식으로 뇌 안의 한 구석에 저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 그 사람과 만날 약속을 잡거나 연락을 하는 데 소극적이 되는 등의 변화가 있게 된다. 또한 향후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접할 때도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우리가 경험을 평가하고 그에 기반헤 우리가 가진 지식을 변경하며 그로 인해 향후의 인식과 행동이 바뀌게 되는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처럼 경험-해석-학습-경험의 수없이 반복되는 순환들로 구성된다.

도라는 개념은 우리가 경험과 해석 사이에 잠시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해석과 반응들이 자동적으로 맨 처음 일어나는 모습 그대로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마음을 둘 수 있다.

앞에서의 예를 다시 보자면,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지 않다고 해서 그 만남과 앞으로의 관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그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까지만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과정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자신의 몸 상태가 만남이 즐겁지 않았던 주 원인이 아니었는지를 생각해 보거나, 상대에게서 보였던 어떤 긍정적인 부분들을 기억해 보거나, 즐거움과 별개로 상대와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마음에 떠올리는 등의 일들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 동안에도 자신의 좋지 않은 몸 상태가 만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그 영향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상황을 재평가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통해 일종의 해방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극에 일차적인 반응으로 대응하는 대신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거나, 적어도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부정적 반응을 멈출 수 있게 된다. 그를 통해 그 반응에서 이어지는 장구한 연쇄과정의 시작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어려운 과정이어선 안된다. 예를 들어 경험에 대한 반응을 항상 의식적으로 통제해서 바람직하고 적절한 반응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유교적 수양에 가깝고 노장 사상의 도와는 다르다.

도를 따르는 것은 물과 같이 쉽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의 일차적인 인식과 반응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의 필연적인 반영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일어난다. 그렇게 변화된 인식과 반응이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서 더 적절한 것이라는 것은 보장 받을 수 없다. 다만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 열리고, 그 공간 안에서 우리의 직관이 이전에 닫혀 있었던 새로운 지점으로 데려가 줄 수 있다는 것만 보장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야 한다.

객관적, 절대적 기준에 맞추어 더 적절한 삶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그 너머에 있는 참 세상 사이의 거리를 인식함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 그것이 도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으로 할 일은 그 공간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경로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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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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