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신은 디지털 신호를 처리하는 네트워크로서 존재한다.
뇌과학은 과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철학에 가까운 편에 속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주제로 다루는 과학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반인이 많은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 삶에 실천적 조언을 해 주는 뇌과학 관련 서적들도 많다. 그 조언의 범위는 사춘기 자녀들을 대하는 법, 좋은 습관을 갖는 법, 학습 효과를 높이는 법,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법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렇게 넓은 분야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가장 핵심적인 뇌과학의 명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갖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얘기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뇌과학의 핵심 지식은, 뇌가 뉴런(신경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뉴런들이 서로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맺으면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을 따라 전기가 흘러다니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뉴런 하나하나는 독특하지 않다. 뉴런들은 자신과 기본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는 다른 뉴런들과 연결된다. 그렇게 연결된 네트워크, 그것이 우리의 정신이다.
조금 더 부연 설명하자면, 뉴런은 가지처럼 뻗어나온 수상돌기들을 통해 연결된 뉴런들로부터 전기 흐름을 받아들인다. 여러 뉴런들로부터 입력으로 받아들인 전기 흐름의 종합을 통해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스스로 전기적인 흥분 상태에 이르고, 이는 축삭을 통해 연결된 다른 뉴런에게로 전달된다. 그런 식으로 전기 흐름이 뉴런들의 연결을 타고 흐른다.
그 연결된 네트워크의 한쪽에는 눈의 망막세포를 비롯한 감각신경세포들이 있고, 이들은 외부 세계의 아날로그 신호들을 디지털화하여 뉴런 네트워크에 전달한다. 일부 감각신경세포는 내부 장기 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들인다. 다른 한편에는 근육과 장기에 연결된 운동신경세포들이 있다.
즉, 우리의 정신 활동이란 신체의 내외부에 대한 정보들을 감각신경세포로부터 받아들인 신호들이 뉴런들의 연결을 통해 흘러다니고 그 중 일부는 장기와 근육으로 전달되어 그 작동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끊임 없는 전기 신호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뉴런들 간의 연결 네트워크, 그것이 우리 정신의 구조이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결정하는 틀이다.
그리고 이 연결들은 정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새로 추가되고, 강도가 달라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서로 관계가 없던 두 개의 뉴런이 동시에 자극받는 일이 반복되면 그 뉴런들 사이에 연결이 생성된다.) 이와 같은 연결이 우리의 기억이고, 우리의 지식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뉴런 간의 연결을 변화시키고 그러한 연결들이 우리의 기억과 지식을 구성한다면,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옥시토신이나 아드레날린, 도파민 같은 호르몬들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통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호르몬 그 자체가 직접적인 감정의 원인은 아니다. 호르몬은 뇌세포들의 화학적 환경을 변화시켜 다수의 뉴런에 동시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우리 뇌 안의 전기 흐름의 방식이 바뀌고, 그 결과로 새로운 신호들이 심장과 눈의 홍채 등의 장기에 전달되어 운동 방식을 바꾸며, 그렇게 변화한 신체 내부의 상태는 감각신호로 감지되어 뉴런네트워크로 되돌아 온다. 그런 과정들을 우리는 감정의 변화로 인지한다. 우리의 감정도 다른 정신적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한다.
논리는 우리가 객관화할 수 있는 규칙에 따라 사고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반면 직관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뉴런 네트워크의 결과물이다. 네트워크에 입력 신호를 넣으면 출력 신호가 나온다. 하지만 그 입력과 출력 간의 연관 관계는 네트워크 상의 연결 및 그 강도에 따르는 것으로 언어적인 분석과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런 직관들이 우리가 신체 내외부의 상태 변화를 인지하여 생존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결론과 행동을 즉각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한다. 이성과 논리적 사고는 이러한 직관을 보완해 주는 도구로서 진화의 역사 상에서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이런 직관에 힘입어 우리는 걷고, 말하고, 미소짓고, 싸우고, 도망친다.
그럼 이런 지식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핵심적인 시사점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는 결정론에 대한 뇌과학 버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 뇌 안의 네트워크는 우리의 의지로 온전히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구조이다. 물리적 부피가 아니라 그 연결의 수의 규모를 생각하면 거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네트워크에 대해 작은 부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숙명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는 숙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이 네트워크의 여기 저기에 새로운 스파크들을 일으킬 수 있고, 우리가 겪는 경험을 변화시켜 학습을 통한 우회적인 방식으로 네트워크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다만, 이런 변화는 핸들과 엑셀, 브레이크로 차를 운전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 구조를 아주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한 기계에 올라타 몇 가지 감지판과 정체 불명의 레버들을 갖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은 변화들을 시도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 변화들이 엮이고 쌓이면서 우리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반드시 뇌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철학적 사고로도 우리는 비슷한 생각들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뇌과학은 우리 정신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델을 제공해 주고, 이 모델은 우리의 직관을 원활하게 돕는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식을 어떤 명제의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이 상황에 적절하게 판단하고 반응하는 역량이라는 생각은 철학적 명제로만 접하는 것보다 신호를 입력 받아 처리하고 결과를 산출해 내는 뉴런 네트워크의 이미지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마찬가지로 사과라는 개념에 대한 지식은 사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과에 해당하는 뉴런이 있다고 하면 그 뉴런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다른 모든 뉴런들과의 관계가 우리가 가진 사과의 개념에 기여한다. 즉, 우리가 접했던 구체적인 사과들의 이미지, 이 이미지들이 축약된 전형적인 사과의 이미지, 빨간 색이나 단 맛 같은 전형적인 속성들, 국광이나 홍옥과 같은 사과 품종들, 사과와 연관되어 일어났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기억들, 사과에서 연상될 수 있는 다른 온갖 개념들, 예를 들어 뉴턴, 파리스, 아담과 이브, 애플시나몬, 앨런 튜링, 오펜하이머 같은 무수한 개념들이 사과라는 개념에 연관되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이러한 연결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사과 뉴런과 고양이 뉴런은 다른 뉴런들과 어떻게 연결되었는가에 의해서만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뇌과학이 제공하는 지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들과 결합하여, 우리의 연상을 풍부하고 원활하게 만들고, 다양한 주제에 관련해서 우리의 이해와 상상을 돕는다. 그런 주제들의 예를 들자면, 직관의 본질, 숙명과 자유의지, 경험과 학습, 개념과 실재, 본성과 실존, 감정과 욕구 등이다.
인간의 뇌는, 신호들을 처리하는 거대한 직관 네트워크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그 네트워크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를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배우고 변화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