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저녁을 배불리 먹은 탓에 소화시키러 산책을 나섰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이 나란히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 몸을 통과해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러고 보니 다들 빈 몸으로 나왔는데 나만 불편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자, 회계이자, 기사이자, 주부이자, 관리자이기도 한 여러 가지 역할을 맡는 사람이기도 하다. 가방 안에는 뭐가 있냐면, 혹시라도 길가다가 아이들이 목이 마를 가봐 미리 챙겨놓은 요구르트가 들어있고, 마트에 갈 일이 있을 가봐 지갑을 챙겨 넣고, 긴급 상황 대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휴대폰도 들어있었다. 코로나시국이라서 여분 마스크도 있었고 아이의 얇은 점퍼도 들어있었다. 이것이 엄마인 나의 평범한 모습이자 가족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밑받침이 되어주는 한 아줌마의 일상이다.
가방이 무겁지 않은데 오늘따라 영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양쪽어깨에 이리저리 옮겨가며 걸쳐보는데 작은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이리 주세요. 다윤이가 멜게.”
그리고는 내 손에 있던 가방을 가져다 조그마한 어깨에 걸쳐놓았다.
“우리 다윤이, 오늘따라 꼭 엄마 같아 보여. 꼬맹이 엄마. ㅋㅋ”
“오늘만은 엄마 할래. 나 소꿉놀이 할 때 엄마 하는 거 좋아해.”
이 말을 듣고, 앞으로 걸어가던 큰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부터 설거지당첨은 너야 너. 알았지?”
“치, 오빠 미워.”
얼마 후, 아빠와 아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였다. 내가 파이팅을 외치려는데 작은 딸이 먼저 말했다.
“아유, 내가 진짜 못살아,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두 손을 입가에 가져가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밥 먹자마자 뛰면, 몸에 안 좋다 구요. 아빠, 오빠. ㅉㅉ.”
웃지도 울지도 못한 상황에, 다행스럽게도 요렇게 귀여운 아이가 어떻게 나 같은 사람한테 당첨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요렇게 예쁜 내 새끼, 어데서 왔을까?”
그럴 때마다 작은 아이는 유일한 한 곳을 가리켰다. 뱃살 가득한 똥배를.
오늘따라 옆에 있는 작은 딸아이는 정말로 꼬맹이엄마다운 역할을 잘해냈다.
주말에 어쩌다 한번 집에 오는 남편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뭐라도 더 사주고 싶어 했고,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했다.
마트 앞으로 지나는데 작은 딸이 좋아하는 만두집이 있었다. 여러 가지 맛으로 된 먹음직한 만두가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비닐을 쓴 채 상위에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었다. 커다란 가마에서는 모락모락 하얀 김이 나왔고, 한번 먹으면 맛있어 죽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물었다.
“다윤아, 만두 사줄까?”
“아빠, 소화 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먹어요? 안 돼, 가자가자.”
아이는, 서서 머뭇거리는 우리를 이끌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어떨 때에는, 어쩌면 저 아이 마음속에는 꼬마어른 한명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이튿날 아침, 김치볶음에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주었더니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쩝쩝 소리 내며 먹는 큰아이를 보고 둘째가 짜증을 냈다.
“오빠, 밥 먹을 때 입 다물고 살살 씹어 먹어. 쩝쩝 소리 내지 말고 좀.”
“뭐야, 넌? 이게 나답게 사는 거라고.”
어이없는 대답에 작은 딸이 흘겨보면서 말했다.
“헐. 그게 나답게 사는 거라고. 다른 사람한테 민폐 끼치는 게, 그게 어떻게 나다운 삶이야? 이기적으로 사는 거지.”
방에서 글을 쓰던 내가 듣다못해 큰소리로 말했다.
“밥 먹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두 아이는 너부터, 너 먼저, 너 때문으로 한참을 티격태격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세상은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데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어둡게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을 숨겨두고 있다. 만물이 깨여나는 아침시간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면 감사한 일도 많이 생길 텐데 밥상 앞에서 싸우면 한 톨의 쌀알도 내 몸에 들어가 영양가가 될 수 없으며 내 몸의 세포들도 건강하지 못한 상황을 불러들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성하고 감사한 아침에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감사한 마음으로.”
두 아이는 나지막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는 지금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이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왜 그러실까, 그리고 문제에 부딪치면 항상 너부터가 아닌 나부터, 네 탓 아닌 내 탓으로, 그리고 ‘고마워, 미안해, 잘못했어.’ 라는 작은 한마디의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용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어주고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언어인지를 알고 있다고 누가 그랬더라?”
갑자기 큰아이가 사과했다.
“미안해.”
“오빠, 나도 미안해.”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고, 미움보다 아름다움을 찾으며, 항상 감사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를, 아이들이 더 한층 깊이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루를 시작하길 기대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이후에 또 다시 옥신각신 다툴 것이다. 하필이면 작은 아이의 어른다운 생각과 말이, 가끔은 큰아이의 신경을 긁어놓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일수록 더욱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힘들게 산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야할지 책속의 비밀을 찾아 필요한 지식을 배워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