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큰 애의 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핸드폰이 눈에 거슬렸다. 큰애는 화장실 갈 때도 핸드폰과 함께하고 밥 먹을 때도 옆에 모셔놓고 잠 잘 때도 베개 옆에 눕혀놓는다. 저러다 꿈속에서까지 따라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될 때가 많았다. 핸드폰이 쉬는 시간은 고작 충전하는 시간뿐인데 그 와중에도 ‘카톡’하고 울리면 쏜살같이 뛰어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긴 한숨을 내 쉬고, 화난 얼굴을 한 내 모습이 십년은 더 늙어 보이고 속이 타들어갔다.
더 화가 난 것은 마음을 휴대폰에 쏙 빼앗기니 정신을 두고 다니는 것이었다. 때론 잠옷바지위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가 하면 양치하는 것을 깜빡 잊고 줄행랑을 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침에 집 문을 나설 때마다 작은 아이가 당부한다
.
“오빠, 학교 갈 때 개미와 부딪치지 마.”
“응. 알았어! 응?”
머리를 긁적이며 큰아이가 나보고 말한다.
“엄마, 밖에 다닐 때 개미와 교통사고 내지마.”
“너나 잘하세요.”
작은 딸아이가 내편을 들어준다.
오늘 아침에 눈뜨자마자 큰애가 건너편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둘째가 나에게 오더니 고발을 했다.
“엄마, 오빠가 아침부터 전화 봐요.”
“뭐야, 넌 맨 날 고발 질이나 하구. 자가진단 했다구.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큰애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알았으니까 빨리 씻고 와. 밥 먹자.”
작은 아이의 고발로 사춘기의 큰애는 항상 불만이 많다. 안 그래도 휴대폰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마다 집안구석에 숨어서 밤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눈치를 피해 다니는데 작은 아이의 잔소리와 일러바치는 태도가 미울 수밖에 없다.
밥상에 마주 앉은 두 아이가 또 다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서로의 좋은 점과 감사한 일을 하나씩 말하기다. 누구부터 할래.”
밥을 먹던 큰애가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 좀 그만해. 아침부터 뭐하는데.”
그러더니 작은 아이가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오빠가 매일, 다윤이 데리러 와서 감사하고, 내가 갖고 싶은 팝잇 사줘서 감사하고, 또 다윤이랑 놀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흑흑..”
이 말을 듣고 있는데 내 마음이 뭉클해났다. 나는 아이에게 등을 토닥여주면서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하고 또 했다.
“이번엔 너 차례야, 너 무슨 할 말이라도 없어?”
“아 놔, 엄마, 나이래 보여두 미래 빌보드차트 1위인 유명인이야. 좀 내 이름에 먹칠하는 행동하지 말라 구요.”
“1위긴 개뿔, 지금은 아니잖아. 어서 빨리 다윤이 좋은 점 말해줘.”
“그래, 넌 공부 잘해서 좋겠다.”
큰아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충 넘겼다.
“안 돼, 한 가지 더 말해.”
“독서 두 잘 하구.”
“엄마가 벌칙을 생각했는데 지금부터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상처주거나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에게는 각자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먹도록 하겠다.”
“그게 뭔데.”
큰아이가 눈이 동그래서 물었다.
“너는 싫어하는 토마토10개. 다윤이는 마시기 싫어하는 레몬차.”
그랬더니 작은 아이의 눈물 젖은 얼굴이 동그래지더니 큰아이와 함께 비명을 질러댔다.
“안 돼~~~~”
어느 새, 밥상주위가 조용해졌다. 이번엔 과연 이 방법이 효과가 있나싶어서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큰애가 정신 사나운 음악을 틀어놓았다. 밥을 먹으며 춤추는 동작을 하면서 위가 신난다는 둥. 그래야 밥이 더 맛이 있다나? 헐.
한편으로 설거지를 하던 내가, 화가 스멀스멀 올라 오기시작하면서 “그만해.”를 외치며 오른팔로 수도꼭지를 밀어 올리는 탓에 물이 나를 향해 뿌려왔다. 아침부터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이 푹 젖어있었고 그 장면을 본 두 아이는 재밌어죽겠다고 웃어댔다.
“이것들이, 웃어? 한번 혼쭐을 좀 내줄까?”
“아니야, 엄마, 생각해보니 내일 금요일이라서 좋아서.”
큰아이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둘러댔다.
젖을 옷을 툭툭 털며 아침부터 물벼락을 맞은 내가 정신 사나운 음악소리에 아니꼽게 말했다.
“너 혹시 사회에 불만 있냐? 무슨 노래 소리가 온 집안의 공기를 아프게 긁어대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도처에 들리는 것 같은 소리인데. 설마 이 노래 네가 만든 건 아니지.”
요즘 사춘기인 아들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어느 날, 친구랑 두 명이서 만들었다고 하기에 들어보니 조금은 괜찮기는 하였지만.
방방방 두발을 음악소리에 맞춰 뛰는 큰애를 보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고만 해라. 밑에 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혈압이 올라가신다. 제발 그렇게 뛰지 마 좀. 오늘따라 좀비생각이 난다.”
그 말을 듣던 작은 딸이 배꼽잡고 웃어댔다. 그러자 큰애가 말했다.
“엄마, 이 노래 재밌지? 너무 재밌지 않아?”
“야, 그것도 노래라고 틀어? 집이 작살나고 뇌가 깨지기 직전이다.”
작은 딸이 끼어들었다.
“왜, 엄마, 다윤이는 듣기 좋은데?”
“그치, 다윤아, 역시. 재밌지?”
큰아이는 한편이 생긴 둘째를 보고 좋아하자, 둘째가 가만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사실은 나도 저 노래 듣기 싫어. 하지만 어쩌겠어. 저렇게라도 재미있다고 해줘야 오빠랑 싸우지 않고 친해지지.”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두 손을 감싸고 키득키득 웃었다. 작은 딸이 큰애를 보고 말했다.
“오빠, 지금 다윤이 오빠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어.”
큰애가 도망가면서 말했다.
“야야야, 제발, 덥다야, 그러지 마라.”
“왜 내가 겨울왕국에 사는 엘사야?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마. 그렇게 더우면, 시원한 겨울에 오빠를 꼭 실컷 안아줄게.”
나는 풋, 하고 웃었다. 아침에 나눈 감사의 말이 이렇게 따뜻한 정으로 변하게 될 줄이야.
이때 큰애가 말했다.
“엄마, 언제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지고 한번 죽도록 미쳐보라면서요. 나는 작곡이 너무 좋고 신나서 영원히 미치면서 살고 싶어. 너무 재밌어.” 헤헵.
“엥? 이건 또 무슨,”
큰애는 매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요즘은 채팅그룹을 만들어 오픈채팅방 한다는 둥, 유튜브 구독자 늘었다는 둥.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세계에 흠뻑 빠져 저렇게 허둥대고 있다.
오늘도, 집을 나서는 큰애보고 둘째가 당부한다.
“오빠, 오늘 체육시간이 있다고 했지. 체육복은 챙겼어?”
“응.”
“밖에 비 오는데 우산도 챙겨.”
“챙겼어. 우야야야야야.”
매일 아침 큰애가 집을 나서기 전 하는 긍정주문이 하나 있다. 오늘도 그랬다. 그게 뭐냐면.
“엄마, 200만부 파이팅. 나는 8천 만부 파이팅.” 헤헵.
그 말인즉 내 책이 팔리는 개수와 자신의 음반이 팔리는 목표이다. 그래서 나도 같이 파이팅을 외쳐보지만.
“200만부가 아니라 당장은 20만부라도 좋고 2만부라도 좋겠다야.”
작은 딸이 말했다.
“엄마는 할 수 있어. 난 엄마를 믿어. 파이팅!”
그러면서 생각했다. 개수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고, 결과보다 내가 매일 도전하는 계단과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매일,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 의미 있는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싸움 끝에 정이 든다는 말이 있다. 혹시라도 내가 일하러 가거나 집에 늦게 들어올 때가 있으면 사춘기의 큰아이인 오빠가 둘째인 여동생을 누구보다 더 정성들여 보살펴주곤 한다. 그 외의 일상에서도 수많은 티격태격 다툼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먼 곳에서 이 상황을 돌아볼 때, 이건 소소한 행복이고 달콤한 삶이고 살아가는 증거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혼자 외롭게 조용히 살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부딪치고 깨닫고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끼면서 가족의 사랑을 배워가는 게 내가 살아가는 삶이고 인생이고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서로를 양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오늘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