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휴대폰이라는 게 없어도 잘만 살아왔는데 만약 지금 내게 휴대폰이라는 네모난 액자가 없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계가 편리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 삶을 방해하고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때론 차가운 유리너머 저 세상의 가짜와 진짜들이 나를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투명한 유리 속으로부터 비추어지는 모습들, 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소통의 순간들이 나의 필요이상의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아 가기도 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 오늘부터 휴대폰과 헤어지기로 하였다.
아침마다 휴대폰에 정신을 빼앗긴 사춘기 큰아이를 보고 타박한다.
“그만 봐라. 좀.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
“당연히 엄말 닮았지.”
이때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있던 작은 딸이 나오면서 말한다.
“안 되겠다. 엄마, 내일부터 내가 동생하지 말고 오빠의 누나해줄까? 그러면 실컷 혼내서 내가 엄마 편 들어줄 수도 있는데.”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울고 싶고 웃고 싶다.
“ㅋㅋㅋ 다윤아, 엄마는 네가 있어 항상 행복해. 고마워. 엄마 편 들어줘서.”
“아니야, 엄마, 걱정하지 마. 나중에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내가 키워줄게.”
“그래~ 내일의 걱정까지 해주다니 고마워.”
이게 우리 집 평범한 일상중의 하루이자 한 집안에 찾아온 첫 번째 사춘기와 두 번째 사춘기의 기 싸움이기도 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작은 아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족과 사회라는 보이지 않은 끈과 쇠사슬에 연결되고 묶여 살다보니, 때론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많다. 요즘 날씨처럼 변덕스럽게 찾아오는 우울한 기분과 뭔지 모를 김빠진 생각에 내 자신을 빼앗기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렇다.
가끔은 지구라는 별을, 내가 사는 곳곳을, 살아가는 흔적들을 지우고 싶고, 지금 주어진 모든 것들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래서 비행기라는 괴상한 새를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하였다. 혹시라도 추락하거나 지상에 내려오면 다시 지구라는 감옥에 갇혀버린다. 도착하는 곳마다 환경이 다르고 사람이 다를 뿐 살다보면 보이지 않는 끈들이 다시 줄줄이 이어져 그 속에 묶이고 만다. 탈출하려고 발버둥질치지만 많은 조건과 책임과 상황들이 발목을 꽁꽁 묶어놓고 위협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그런 규칙과 책임과 법과 예의를 지켜야만 했다. 아니 내 생각이 잠시 그럴 때가 있다. 살면서 혹시라도 힘들고 지칠 땐 가끔 지구를 탈출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
어릴 때 거의 매일매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높은 하늘에서 한 눈에 대자연의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아름다운 바다 위를 자유로이 날기도 하였다. 꿈속에서 괴물이나 악마가 등장하면 높은 하늘을 날아서 그 자리에서 시원히 탈출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때론 지구위의 모든 사람들은 꼭 마치 이 세상에 놀러온 손님들 같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그게 뭐냐면, 지구라는 감옥에는 주인이 없다. 죄인들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방문한, 무지한 손님들이 주인 없는 집에서 지구를 맘대로 파괴한다.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기도 하고 땅을 파고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다. 실컷 먹고 마시고 남은 쓰레기들을 도처에 널려놓는다. 그리하여 정리정돈이 안 되는 지구라는 감옥 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지도 모른다. 알면서 나만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그러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다 한 배를 탄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지구라는 주인 없는 곳에서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적어도 나는 무지라는 늪에서 인생을 허무하게 살아왔다. 지진이라는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고 자연재해라는 물살에 떠밀려가기도 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방향 없이 죽도록 노만 열심히 젓는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도처에서 구멍 뚫린 삶을 발견했다. 그리고 인생이란 길을 멀리 온 나머지 육지는 멀어져 갔고 바다중간에서 허둥지둥, 갈팡질팡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이 들자 섬뜩함을 느꼈다.
만약 지구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중간에서 감쪽같이 사라 진다해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란 존재를. 그저 어지럽게 널려있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숨을 쉬고 하루하루 견디다가 바람처럼 조용히 사라져도 그렇게. 정말로 그렇다면 난 하루살이와 다른 점이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인생이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해놓고 내가 배의 주인이 되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나? 파도에 휩쓸려 가는 삶이 아닌 내 직감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날씨를 살피면서 다시 출발한다는.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땐 한 번씩은 정말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죽거나 자살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난 항상 ‘자살’의 반대어 ‘살자’를 원한다. 본의 아니게 어쩌다 지구라는 이곳에 빈 몸으로 던져졌지만 이왕 이렇게 된바 긍정적인 생각으로 놀러 왔답시고 한번 제대로 살다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비록 위인과 지성인들처럼 그렇게 화려하고 위대하게 살진 못하더라도 나로서 오직 나만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가는 것뿐이다. 문제는 어떻게 잘 살다 가는지가 문제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루하루 고민하는 중이고 서투른 글이라도 매일 조금씩 쓰면서 내가 살다간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