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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국제택배

by 조수란

“어디까지 왔니?”


“지금 공항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 비행기에 앉으면 바로 간다고 했어요.”


전화기너머로 통화할 때마다 엄마가, 택배를 무슨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히 기다리고 무사히 도착하길 바랐다. 어제 우체국에서 출발한 택배를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다. 중국까지 가려면 보통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거기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서 어쩌면 한 달 넘게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며칠 전, 동네 마트에 갈 때마다 나는 택배상자에 무엇을 넣을지 곰곰이 생각하며 마트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어릴 때부터 고생 속에서 우리 두 자매를 힘들게 키워온 엄마는 지금도 한 푼이라도 아끼시고 모은다. 그럴 적마다 내가, 돈을 아껴 봤자 종이 장에 불과하다며 잔소리를 하였고, 엄마에게 돈을 드려도 쓰지 않고 꼼꼼히 저축하셨다. 이미 몸에 배인 습관과 고집된 생각이 앞날의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들여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택배에, 건강식품이과 간식을 사서 부치는 거였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부치지 못했던 택배를 오랜만에 부친다고 생각하니 약간 설레기도 하였다. 무엇을 부칠까? 어떤 것을 부치면 엄마가 좋아하실까? 엄마는 내가 쓰는 돈 때문에 아무것도 부치지 말라고 하시지만 그럴수록 뭔가 조금이라도 더 보태고 싶은 게 자식의 마음이 아닐까?


마트의 코너에 현미경을 들이대듯 생각을 파헤치며 이건 어떨까? 저간 괜찮을까? 하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유통기한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엄마가 카레를 좋아하시니, 약간 매운맛, 매운맛. 그것도 오뚜기 카레, 백세 카레를 종류별로 담아 10봉지를 골랐다. 그리고 깔끔하게 비닐로 포장한 마른 미역도 여러 봉지를 샀다.


자를 필요 없이 사용하기 간편한 걸로. 또 여러 종류의 과자랑 200개짜리 커피도. 사실 이 모든 것이 엄마가 사시는 동네마트에 있지만 혼자서 절대로 사서 드시는 편이 아니다. 때문에 하나라도 더 신경 쓰고 챙겨야만했다. 인터넷으로 각종 건강식품과, 샤워할 때, 등 때밀이와 마스크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골라 샀다. 매일 혼자서 샤워하실 때, 손이 잘 닿지도 않는 등을 이리저리 밀고 씻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났다.


내가 어릴 땐 그 바쁜 농사일에 치이면서도 그 와중에 조그마한 나를 거꾸로 안아 머리감기고 커다란 대야에 앉혀 목욕시키면서 우리를 키워 오신 엄마다. 코로나가 비록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지만 가족 간의 든든한 끈으로 이어진 사랑을 더욱 깊고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다.


지금은 그저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엄마가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 것. 195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오신 엄마가 오늘 날,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드시고, 원하고 이루고 싶으신 걸 맘껏 이루면서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는 게 자식들의 바람이지 않을까 싶다.


우체국에 가서 큰 박스를 사다가 한쪽에 테이프를 단단하게 붙였다. 그 안에 내 마음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하여 빈틈없이 꼭꼭 채워 넣었다. 어느새 불룩해진 박스가 이젠 배불러서 그만 넣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맨 위의 물건들이 미끄러지면서 도로 토해냈다. 이대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우체국에 달려갔다. 제일 큰 박스로 주문했는데 내가 산 박스가 제일 크다고 했다. 한참을 끽끽거리며 다시 큰 박스에 하나씩 옮겨 담았다. 물건 몇 개를 빼고 나니 드디어 박스 입구를 어설프게 다물게 할 수 있었다.


생각 같으면 박스를 두 개로 담아 편하게 보내고 싶은데 쟤네들이 함께 도착 못하면 어쩌지? 함께 손을 잡고 갈 수도 없고 몸 따로 떨어져 있는 게 뭔가 모르게 불안했다. 그 먼 길을 가다가 혹시라도 한쪽과 갈라지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마음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한 개의 박스에 담겨가야 할 텐데 두 쪽으로 나누어지다가 나중에 반쪽이 어딘가에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라는 쓸데없는 생각세포들이 나를 마구 날뛰게 했다. 다음에 또 부치더라도 억지로 한 개를 겨우 만들었다. 마치 자식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듯 그렇게 택배는 테이프로 단단하게 묶인 채 내 손을 떠나버렸다. 어서어서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 어머니 곁으로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면서.


자연의 순리대로 부모가 어릴 때부터 나를 키워왔듯이 이젠 내가 부모에게 효도할 차례다.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 나는 지금도 빚지고 사는 존재다. 가끔씩 누구의 부모가 어저께 돌아가셨다. 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면 나도 내 엄마가 생각나 부랴부랴 영상통화를 한다. 저편 전화기너머 화면 속에 엄마가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화면에 켜져서야 한시름을 놓는다.

오늘은 택배가 비행기 탔을까? 배가 불러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을까? 짐을 내리는 사람들이 살살 다루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들을 사서 한다.


사실 우리는 택배를 부치면서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 보낸다. 어쩌면 그 안에 우리의 영혼도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번 내 몸의 분신처럼 걱정하면서 무사히 집까지 도착해야 한 시름이 놓이는 것처럼, 나는 도착하지 않는 택배를 오늘도 걱정하기 시작한다.


가끔씩 집에 오는 택배 박스를 뜯을 때 기분이 좋지만, 다 뜯고 나면 버려진 빈 박스가 내 마음을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한테 부치는 택배는 나의 정성과 영혼이 가득 담겨져 있다. 택배가 엄마와 나의 마음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그리움과 믿음과 사랑을 더욱 깊게 이어준다.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그렇게 국경너머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면서 오늘도 간절한 기도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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