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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름다운 사랑

by 조수란

학교에서 온 작은 딸이,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마한테 줄 선물이 있다고 하더니 폴짝폴짝 뛰어왔다.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열어젖히며 와르르 쏟더니 맨 밑에 종이로 만든 팔찌를 꺼내 손목에 끼워주었다.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만든 색종이에다 ‘엄마, 사랑해요. 파이팅.’을 써놓았다.


“엄마, 다윤이가 학교에 가면 보고 싶을 때, 이 팔찌를 봐. 다윤이는 항상 엄마를 사랑해. 혹시나 힘들 때 이 팔찌를 보면서 힘내.”


“다윤아, 너무 고마워. 이 팔찌가 너무 예쁘다.”


“헤헵. 다윤이가 만들었어. 선생님의 도움이 조금 있었지만, 그 위의 글들은 다윤이가 쓰고 다윤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야.”


“알았어. 너무 고마워. 엄마가 잘 간직할게. 다윤이 보고 싶을 때나, 힘들 때 항상 가까이에 옆에 데리고 있을게.”


“응, 엄마.”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받는 순간 진한 감동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왔다. 갑자기 눈물샘을 통해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두 손가락으로 번갈아 찍어가면서 간신히 막아 나섰다.


오늘 MBC life에서 방송한 ‘VR휴먼다큐멘터리-너를 만났다’에서 세상 떠난 딸과 VR로 재회한 모녀를 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네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가 3년 전 가을, 일곱 살이 된 셋째를 떠나보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 VR(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그토록 보고 싶던 아이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온 얼굴을 덮쳐왔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그 아픔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같은 아이의 부모로서 충분이 공감 가는 그 마음으로 지켜보는 나도 이렇게나 힘든데, 당사자인 그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더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혹시라도 아이들이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몸의 분신과 같은 아이가 다치기라도 할 가봐 신경을 기울이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게 이 세상 부모들의 마음이다.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내려놓는 게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고 엄마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는 자식을 잃어버렸으니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 동안 아이가 심심하다고 할 때마다, 나는 글을 조금이라도 더 쓰고 독서를 한 장이라도 더 하기 위해 아이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곤 하였다.


“심심하면 만화영화를 보던지, 오빠하고 놀던지, 아니면 너 하고 싶은 걸 하려무나.”라고 하면서 회피하고 둘러대고 귀찮아했다.


오늘 아이가 만들어준 선물을 받으면서, 이렇게 기특하게 잘 자라준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고,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오늘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 엄마와 이모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사시는 분들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위에 오빠가 있었는데 태어 난지 얼마 안 되어 고열로 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의사가 준 해열제를 먹였는데, 열이 내리지 않자 큰 병원으로 갔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고 하였다.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던 아버지가, 아들을 잃은 그 날부터 주정뱅이가 되고 담배에 파묻혀 사셨다고 한다. 그렇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 위로할 수 없으며 자칫하면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우리 이모는 백 혈암에 걸린 아들을 먼저 이 세상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엄마중의 한 사람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곳에는 골수 이식하는 수술이 없었기 때문에 주사로 하루하루 연명을 하였다. 이모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전 재산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섰으며,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면 어떻게 하나 아이를 살려보려고 간절하게 애원하면서 집집마다의 문을 간절하게 두드렸다. 그렇게 이모의 아들이자, 나의 외사촌 동생은 4년을 살다가 14살, 꽃을 피우려는 나이에 제대로 한번 피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오늘 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어쩌면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 세상과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깊은 아픔이고, 정이임을 말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자식에 대한 진심으로 느끼는 사랑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내일보다 소중한 지금 이 순간 오늘을, 내 아이의 옆에 함께 있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좋은 시간과 소중한 선물이 되는 아름다운 오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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