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노릇노릇한 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시원한 맥주한잔으로, 몸속을 녹이면서 그 동안 쌓아왔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가셔내는 것 같았다. “캬아~” 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의 시원한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이때 TV에서 ‘차트를 달리는 남자’를 방송하였다. 한참을 지나, 화면에서 한 남자가 만취한 상태로 자신의 여자 친구를 폭행하는 장면이 드러났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한테 맞아 눈이 시퍼렇게 멍든 자국을 보고 있던, 분노한 남편이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면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깜짝 놀랄만한 폭언을 했다. 그것도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이씹새끼.”
처음으로 욕하는 얼굴을 본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지만, 그 중에서 제일 놀란 사람은 아마도 갑자기 말을 뱉어낸 본인 스스로 인 듯싶었다. 이 상황을 수습하느라 남편은 허둥지둥 채널을 돌리더니 어이없는 변명을 해댔다. 우스꽝스럽게도 그 시간에 맞춰 다른 채널에서 맨 꼭대기에 이런 글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먹은 한 끼였다. 저녁에 폭식하면 안 되는데, 더군다나 육식을 먹으면 더욱 안 된다고 했는데 이를 어째, 볼록한 배를 만지면서 후회와 한탄을 쏟아냈다. 수명을 단축하는 행동을, 오늘도 했으니, 내 몸이 주인을 잘못만난 탓에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싶었다. 이때 작은 딸이 백세공원으로 산책을 가자고 졸랐다. 딸 바보인 남편이 콜을 외치는 바람에 우리는 그렇게 또 한 가족이 산책에 나섰다.
이십분 가까이 걸어서 아담한 공원에 도착했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내가 물었다.
“이 공원의 이름을 무엇 때문에 백세공원이라 지었을까?”
갑자기 작은 아이가 말했다.
“혹시 우리가 백세까지 살아도 망가지지 않는 공원에서이지 않을까?”
“매일 백보를 걸으면 백세까지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여서일까?”
내가 말했다. 그러자 큰아이가 뒤를 이었다.
“공원의 수명도 우리랑 같이 백년을 살고, 그 길을 산책함으로써 건강하게 백년을 살아간다. 이 말이야. 흠.”
비록 답은 제각각이지만, 아무튼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저마다의 간절한 소원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는 머리로는 잘 이해하면서, 행동으로 절대 하지 않는 안 좋은 습관을 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때론 부정적인 생각으로 스트레스 속에 자신을 가둬놓고 끙끙 앓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면 상한 음식이라도 마구 먹어댔다. 맵고 짠 음식도 당기면 가리지 않고 먹었고, 게으름이 건강을 망가뜨려도 운동과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는데서 부터 내 인생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할 텐데 지금부터라도 내 몸의 경영부터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나의 양심을 마구 찔러놓는 순간이었다.
아담하게 꾸며진 이곳은 곳곳에 쉴 수 있는 귀엽고 예쁜 벤치들로 설치되어 있었고 바다도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늦은 밤에 와보니, 야경의 황홀함 속에 빠져 더욱 도취되는 느낌이다. 두 대의 망원경 앞에서 우리는 밤 속의 풍경을 이리저리 눈에 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은행 간판 앞에서 큰아이가 능글맞게 농담을 건넸다.
“어? 저기 저, 은행 안에 계좌 번호가 보이네.”
“치, 말도 안 돼.”
내가 콧방귀를 끼면서 말하자, 큰애는 재밌어 죽겠다고 하더니, 망원경을 내 얼굴에 들이대더니 놀리기 시작하였다.
“자, 이번엔 어디보자. 엄마 얼굴이 얼 만큼 큰지 함볼까 나?”
“저기 저 아파트도 보이네.”
“야, 절대 안 돼. 그러다 너 집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변태라고 붙잡혀 갈수도 있어.”
“아, 놔. 엄마, 뭐 하러 남의 집을 들여다보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릴 좀하지 마.”
이때, 남편이 어딘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눈치를 챈 작은 딸이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빠, 흡연 말고 금연하라니까요. 어휴 ㅉㅉㅉ”
저 멀리 가면서 듣는 척 마는 척, 하던 아빠가 그저 허공에 대고 손을 높이 흔들었다.
매일 함께하는 따뜻한 가족이 있어서 삶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함을 느낀다.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때로는 누구를 원망해보고, 때로는 그 누구를 위해 살아가지만 이 모든 선택과 행복은 내가 가꾸어 나가는 것이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 안에 모든 세계가 살아있음에 또 한 번 느꼈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넘어지고 부족하고 실수투성이로 살아가겠지만 그 속에서 경험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울고 웃으면서 이 세상을, 내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사랑하는 삶이고 세계고 인생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가족 모두다. 그렇게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