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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우리 가족의 어느 주말

by 조수란

출판사에 첫 책을 투고하였을 때, 연락이 온 출판사가 있었는데, 책속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많이 담겨져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바깥에서 보고 들은 일도 추가하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물론 계약은 다른 출판사와 하였지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면서도 제일 많이 걱정하고, 항상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세계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아이들이 중심이었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아프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우리부부는 기꺼이 일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곁을 지켜주고,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려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다 비슷한 것처럼, 우리 부부는 힘든 삶속에서나,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제일 소중하게 여겼고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아이들과 부대끼고 얼굴을 비비면서 하루의 피곤함을 가셔주는 충전기와 같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고 그 순간의 소통으로 서로의 마음의 끈을 연결해주고 이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지? 글을 쓰고 보니 이번 책도 하얀 백지장위에 온통 우리 가족의 삶의 흔적들만 가득한 이야기인데. 가족에 대한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다음 책에는 꼭 가족의 틀이라는 세계에서 걸어 나와야겠다.


우리가 사는 요즘은 남편이 혼자 벌어 우리 가족 셋을 먹여 살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주말에 한번 집에 오는 아빠를 손꼽아 기다린다. 어른인 나도 그렇긴 마찬가지이다. 남편이 집에 오면 맛있는 요리도 해주고 무엇보다 한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함께 하는 즐거운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오는 날 밤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도 전혀 두렵지 않았고, 달리기, 제기차기, 축구시합과 같은, 조그마한 가족 운동회도 신나게 하였다. 가끔은 우리가족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다 말고 한 잔의 맥주에 기분이 상승하여 각자의 장끼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나의 능글맞은 웨이브 댄스 실력에 아이들은 배꼽잡고 쓰러지고 남편은 뒷목 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고 토요일과 일요일아침은 늦잠 자는 게, 당연한 주말이 된다. 제일 먼저 일어난 남편이 아침준비에 나선다. 그 뒤에 부스스 일어난 나를 보고 한잠 더 자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오는 날에는 푹 쉬라고.


남편이 밥하는 사이 나는 전날 저녁에 도처에 널려져있는 지저분한 밥상을 치우고, 따뜻한 레몬차와 보리차를 끓여놓는다. 남편의 요리가 거의 완성될 무렵 아이들을 하나 둘씩 깨우고 씻게 한 다음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한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큰 아이를 위해 남편은 밥 먹기 전, 주차장에서 함께 줄넘기를 한다. 그러면 작은 아이는 설거지 하는 나에게 재잘거리며 학교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오늘도 그랬다.


“엄마,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비밀이 있는데 말해도 될까?”


설거지 하다말고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나는 ‘뭐지?’ 라는 의문과 함께 아이한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이건 진짜, 진짜 비밀인데 엄마가 오빠와 아빠한테 얘기하면 절대절대 안 돼.”


“ㅎㅎ 뭔데. 그렇게 심각해?”


“응, 아주 많이. 근데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에라, 모르겠다.”


“아, 좀 빨리 말해. 대체 뭔데. 그 비밀이?”


참다못한 내가 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재촉했다.


“엄마가 바쁘시니까 1.5배속으로 말할게. 그 있잖아. @#$%^&*@#$%&*@#$%^&* 나와 사귀자고 고백 했다 구요.”


“뭐라고? 언제?”


“어제.”


“그래서 뭐라고 했어?”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다윤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돼?”


“그냥. 모르겠어. 근데 이거 아빠와 오빠한테 진짜 비밀이야. 엄마. 약속 지켜 줄 거지?”


“알았어. 약속할게.”


마침, 아침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는 탓에 재빨리 상을 차렸다. 방금 전에 작은 아이가 털어놓은 비밀을 생각하면서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밥을 먹자, 위도 정신도 즐거워졌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사랑과 고백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깨끗하고 순수한, 친구보다 조금 진한 우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부부는 아이들이 더 잘했으면 하는 비교에서가 아닌, 더 나아지길 바라며 집착과 욕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 그냥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자유롭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아름답길.


하늘이 이렇게 우리부부에게 선물 같은 천사들을 보내주셨다면, 우리는 이 천사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깊은 사랑을 주는 게 유일한 낙이고 삶의 희망이다. 그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고 지지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최선의 방법이고 최고의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오늘도 소중한 이 순간을 함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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