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열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면 알약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서투른 탓에, 약이 목구멍에서 반사적으로 튕겨 나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손에 든 빗자루가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집이 떠나 갈듯 한 울음소리가 열려진 창문을 향해 온 동네를 마구 날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에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이 서툴러서 맞았고, 그 후에는, 마트의 심부름이 서툴러서 혼났다. 때론 맞으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고,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맞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왜 서투르고 부족한 아이일까.’ 자책만 했고, 너무 울어서, 울기 좋아해서 맞았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엄마가 이젠 내 아이들의 할머니가 되셨다. 지금은 또 그때와 달리 아이들을 너무 예뻐해 주신다. 물론 좋은 일이지만 너무 과하다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은 딸이 큰아이인 오빠한테 잘못을 저지르면, 나는 항상 그 원인을 먼저 설명하라고 하였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부터 하게 하였다. 만약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나면 얼른 사과하라고 하면서.
그 동안 항상 아이 둘을 평등하게 키우려고 애써왔다. 엄마는 그런 나와 정반대였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무조건 언니 편을 들어주시더니, 내 아이 때는 동생 편만 들어주신다. 이처럼, 편견이 심한 엄마와 자주 부딪칠 때가 많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온 집안의 예쁨을 받으며 애지중지 키우다보니 별로 혼난 적이 없다. 어쩌다 내가 작은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려고, 심각한 표정으로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면 무서워서 울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를 빼앗아 안으며 내가 무슨 애한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나를 타박하시곤 한다.
“아직 애기인데 뭘 안다고 그렇게 심각하게 굴어?”
“엄마, 아이를 좀 내려놔. 세 살이면 옳고 그름을 가르쳐 줄 때가 되었다 구요.”
“시끄럽다. 너 하던 일이나, 마저 해.”
“그럼,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왜, 맨 날 빗자루로 나를 혼냈는데? 그래도 나는 아이들한테 매를 들지는 않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니? 그때는 농사일에 지친데다 시집살이를 하느라 힘들어죽겠는데 거기다 너까지 목이 터지도록 울어대니까. 낮에 쌓았던 분풀이를 너한테 한 거지.”
“헐, 대박. 그럼 내가 엄마의 분풀이 쓰레기통이었겠네.”
“..............................”
비록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머니의 힘들고 지친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어머니는 가난에 찌든 삶을 살면서, 시어머니의 구박에, 남편의 술주정에, 바쁜 농사일에 치우치면서, 우리를 키우시느라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 내어 주신 분이다.
때문에 엄마가 서투르게, 서투른 나를 키워 오신 경험을 바탕으로, 내 아이를 키울 땐 절대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고 신중하게 생각했다. 서툴러도 좋으니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주고 믿어주고 사랑을 듬뿍 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필요한 순간에, 어디든지 나타나고 언제든지 달려가고, 얼마든지 함께하고, 가까운 곳에 있음을. 항상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든든한 믿음과 충분한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오나, 혹시라도 어디 아프면 제일 먼저 엄마부터 찾는다.
그러면 오랜만에 집에 일찍 돌아온 남편이 말한다.
“야들아, 너희들은 지금 몇 살인데, 아직도 엄마를 찾는 거야?”
“아직 둘 다 미성년자이잖아요.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지 뭐예요. 그래도 집에 와서 찾을 엄마라도 있어서 얼마나 좋아. 내가 어릴 때 학교에 갔다 오면, 항상 빈집에서 외롭게 보낸 기억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스스로 신발을 씻고, 스스로 자기 방을 청소하고, 스스로 알약을 넘기기엔 많이 서투르다. 하지만 스스로 이겨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뭐든지 잘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천천히 배우면서 실천하다보면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지는 거야.”
처음에는 뭐든지 낯설고, 누구든지 서툴다. 그 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천천히 익혀가기도 한다. 아이들의 마음과 키가 그렇게 성장해나가듯이, 서투른 어른들도 서툴러도 서두르지 않으면 마음의 키가 조금씩 커지고 깊어진다. 때문에 아이와 어른은 매일 함께 성장하고 함께 자란다고 할 수 있겠다.
나와 내 친구를 비롯한 수많은 엄마들은 가끔 자신의 아이가 모든 방면에서 항상 잘하길 바랐고, 무엇이든지 스스로 척척 해내길 바란다. 문제를 풀 때도 그렇다. 아이가 모르면 기다려주는 대신 급한 마음에 재촉하기도 해보고, 문제를 함께 푼다는 면목으로 정답을 슬쩍 알려주기도 한다.
서투른 아이들과 달리 몇 십 년을 반복되는 익숙함 속에서 달려온 어른들은 갑갑해한다. 자신들이 어릴 때의 처음은 잊은 채.
자동차 초보 운전도 그렇다. 자신들의 초보딱지 시절을 잊은 채, 앞에서 달리는 초보운전자 가 서툴고 느릿느릿하다 싶으면 경적을 마구 울려대고 심지어 욕설도 거침없이 내 뱉는다. 인생이란 길에는 누구나 처음이 있고, 또 그렇게 서투르고 실수하고 실패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익혀가고 익숙해지는 데도 말이다. 서투르면,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한 발작씩 앞으로 내딛는 게 삶이고 인생이 아닐까 싶다. 서투르면 서두르지 않게.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응원과 배려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