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by 조수란

어느 금요일 아침이었다.


“엄마, 오늘은 학교 가기 싫어.”


학교 가기위해 매일 의무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딸이 오늘 따라 몹시 피곤한 모양이다.


“오늘 하루만 가면 내일 아침엔 늦잠을 자도 되는데.”


따뜻한 물 한잔을 내밀며 내가 말했다.


“아 맞다, 오늘 금요일이지. 아빠 오는 날이다.”


“빨리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도 오고, 학교도 안가고.”


항상 아빠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둘째다.


“다윤아, 우리 나이를 바꿀까?”


“왜?”


“내가 너 대신, 학교를 가고 다윤이가 엄마대신 집에서 설거지 하고. 그리고 다윤이의 예쁜 얼굴과 귀여운 손과 발을 엄마가 가지고.”


“안 돼. 엄마, 다윤이 학교 갈 거야. 학교가기 너무 좋아. 사실, 난 엄마처럼 주름이 있는 것도 싫고 손이 까칠까칠한 것도 싫고 발뒤꿈치가 갈라진 것도 싫어.”


“그게 뭐 어때서, 그런 생김생김이야말로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고, 부지런히 일해 온 노동의 징표이지 않나? 발뒤꿈치가 갈라진 것은 그 동안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인생을 걷고 뛰면서 달려온 노고와 수고가 남겨놓은 흔적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든든하게 받쳐준 기둥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건 겉면에 불과할 뿐이고 나이 들면 돈으로 주고 사지 못할 경험이 생기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며 지혜가 담긴 생각과 이야기도 생겨날 수 있단다. 친구들이 많아지고 내 삶을 내가 운전하면서 살수도 있지 뭐야.”


“세상에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당연히 좋은 점이 있겠지. 그래도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좋아.”


“그래, 생각 잘했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리 좋아도 나이만큼은 바꿀 수 없고, 우리 집에서 네가 제일 어리고 앞날이 제일 창창한 나이 부자야. 아무리 돈이 많고 지혜가 많지만 젊음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단다.”


“네, 엄마 감사합니다.”


저녁에 집에 온 남편이 작은 아이에게 선물을 주면서 말했다.


“다윤아, 지금 이대로 잘 자라줘. 크지 마. 아빠 먹여 살릴게.”


나는 저런 말만 들으면 정말 화부터 난다. 저것도 교육이라고 하는 건지. 내가 막 뭐라고 하기 전 둘째가 먼저 말했다.


“엥? 크지 말라고 하면서 잘 자라줘. 하는 건 또 뭐지?”


자신이 잘 못 말했음을 알아챈 남편이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마음만 크고 몸은 크지 말라는 말이야.”


“아빠, 그게 어디 다윤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야?”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똑똑한 딸의 말에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 들어선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문뜩 놀랄 때가 많다. 나이만 먹었지 모은 것이 없고, 이루어 놓은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음을.


비록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살아온 경험이 소중하고, 든든한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며,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오늘을 배우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지금도 나이만 먹었지 아는 것이 없는 나는 매일 이렇게 아이들한테서 배우고 느끼고 깨달으면서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씩 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어르신으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나이만 먹었지 나잇값을 못하는 노인을 만날 때가 있다.


<토닥토닥 마흔이 마흔에게>의 책에서는,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세월 속에서 저절로 되지만, 나이 들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부단히 자신을 가꾸고 가다듬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이들 수록 유치하다는 소리를 듣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이를 훈장으로 여길 뿐, 어른이 되려고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이 들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함께 늙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어르신은, 자상한 말투와 풍요로운 마음과 슬기로운 지혜가 몸에 배여 있다. 남을 배려하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기도 한다. 반면 노인은,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는 동시에 거침없는 욕설과 불친절한 모습으로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듯이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그 사람의 세계이다. 작은 아이를 통해 내 나이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른으로 살아갈지, 노인으로 살아갈지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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