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저녁 먹고 근처에서 얼마 멀지 않은 바닷가에 산책을 나섰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우리의 몸을 가셔주었고, 두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한참을 걸어 횡단보도를 건넜다. 저 멀리 보이는 곳에, 사면팔방이 강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벤치가 있었다. 우리는 벤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날아온 모기도 아닌 하루살이 무리들이 나타나 머리위에서 뱅뱅뱅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공중에 대고 팔을 휘날리며 쫓으려고 애썼다.
“뭐야, 저리 못가? 너희들은 하루만 살면서 왜 이렇게 날렵해? 저녁이 되면 나이 들어 힘들어해야하는 거 아니니?”
“뭐야, 엄마, 그 말은?”
큰아이가 갸우뚱해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하루가 하루살이의 일생인 것처럼, 사람의 일생에 비교하면, 하루살이의 아침이 우리의 어린 시절, 점심이 우리의 중년시절, 저녁이면 노년시절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그러니까 저녁이 되면 노인이 되는 것과도 다름없는데, 힘이 없어야 정상인 게 아닐까?”
“푸하하하. 아무튼 웃기긴 하네. 하지만 한편으로는 쟤네들이 하루를 살면서 지루할 수도 있어.”
“왜?”
“하루살이에겐 하루가 한평생인데, 평생을 살면서 행복하기만 할 순 없으니까. 내 친구가 그러는데 하루살이가 성충이 되면서 입이 사라진다고 했어. 우리는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한데, 하루살이는 그 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일생이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할까?”
이때 산들바람이 내 기분을 쓰다듬어 주는 듯 춤을 추면서, 길가의 꽃과 식물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듯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봤지, 저기 저 꽃과 식물들이 마치 바람의 휘파람에 몸을 맡겨 춤을 추는 것 같구나. 어쩌면 저들의 영혼은 바람이 아닐까? 바람이 불어와 앉는 곳곳에는 영혼이 실려 아름다운 춤을 추거나, 서로의 대화를 즐겁게 나누거나, 우리를 보고 손짓 하는 것 같은, 한 폭의 그림 속에, 어쩌면 자연의 신비한 비밀의 통로가 숨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나.”
자연을 알고 사랑할수록 우리는 자연과 친해지고, 자연과 하나가 될수록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자연에게 감사하게 생각할수록 자연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누어주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더 많은 것을 가만히 알려준다. 세상에는 빛과 사랑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할수록 빛이 나고 빛나려면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기 위해 물 속에서 천일을 견딘다고 하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고 보니 하루살이에 비교하면 덩치가 훨씬 큰 내가 반평생 가까이 살면서 온전한 하루를 살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라도 천일을 꾸준히 견뎌온 적이 없는 한사람이었다. 나는 어째서 그 동안 멋진 하루를 위해, 누구도 대신할 수없는, 하루를 위해 하루살이처럼 천일을 도전하지 않고 살아왔을까? 그 무언가를 천일만 꾸준히 배우면서 노력하고 천일을 견뎌 왔다면 나도 저 하루살이처럼 무언가 달라지고 변화하는 순간과 짜릿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48분 기적의 독서법’의 책에서는 ‘교보문고의 신용호 회장님도 천일의 독서로 거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긋고 사회에 공헌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매미도 7, 8년간 긴 세월을 땅속에 살다가 힘겹게 올라와 15일정도 살다가 간다고 하였다. 몸집이 이렇게나 작은 벌레들도 짧은 생을 살아가기 위해 긴 세월을 견디는데, 인간인 우리는 무엇을 더 바라고 그 무엇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싶다.
아무리 힘든 상황과 고통과 죽음이 들이 닥쳐도, 우리를 살리는 그 무엇이 우리를 강하게 버티게 만들 때가 있다. 때론 말없이 옆에서 들어만 주고 지켜줄 때, 때론 작은 사랑과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위로와 희망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항상 사랑과 믿음, 감사와 용기라는 단어가 네 수레바퀴처럼 평행으로 달리면, 많이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견디게 해주고 살게도 해준다. 이 글들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의 힘이고, 치료제이고, 때론 비타민 같은 정신의 영양제가 되어주는 희망의 단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위해 견디는 삶의 목표나 그 무엇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완성해나가는 발판과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매 순간을 매일 하루를 일 년을 견뎌내는 과정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즐겁고 의미 있게, 재밌고 기분 좋게, 나답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나를 선택하여, 삶을 더 한층 가볍게 견뎌내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작디작은 곤충들한테서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순간을 배움으로 채우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가 항상 자연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한다. 그게 뭐냐면, ‘자연님, 감사합니다.’ 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자연님, 사랑합니다.’라고 가만히 속삭였다.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