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살아가는 수많은 질병 중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각종 암세포들이 생겨나면서 덩어리로 뭉쳐 병을 더욱더 악화시키면서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만약 누구나 준비되지 않는 죽음의 위기에 닥치게 되면 공포에 휩쓸려 철렁 무너져 내리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한다.
그 동안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난지도 모른 채, 하루를 바쁘게 살아온 삶이 원망스럽고 뒤늦게 후회라는 아픔을 견디면서 앞으로의 남은 삶을 어떻게 소중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애틋하게 여기면서 그 동안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고 무엇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삶에 자신을 내어놓았지만 그 동안 진정한 삶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는 삶을 탓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질병이 우리 몸을 덮치는 이유는 삶의 안 좋은 습관에서 온다. 몸에 좋지 않은 맵고 짠 음식습관이나, 밤낮으로 바뀐 생활의 바이오리듬을 깨는 습관이나,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서 오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이 암이 우리의 육체를 침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곳곳에도 존재한다. 육체에서 생기는 암 덩어리는 수술로 제거하면 되지만 정신에 생기는 암 덩어리는 생각처럼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 동안 살아온 자신만의 삶속에서의 고집과 편견이 들어있어 누군가의 말이나 도움이 치료제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본인의 열린 마음과 생각과 의지가 중요한 듯싶다. 이럴 때엔 옆에서 뭐라고 말해주기보다, 옆에서 조용히 귀 기울여주고 편안하게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는 한가지의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 언니와 통화를 할 때면, 힘든 삶에 치여, 만신창이가 된 마음이 말투와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그럴 때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매일 일이 힘든데다가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가 가출해 집을 나가고 하나뿐인 남편이 밤늦게 까지 낚시질을 하면서 만취상태로 집에 들어온다고 하였다. 처음에 들어주기만 하다가 반복되는 일상에 내가 말했다.
“언니, 언니야말로 제일 편안한 사람이네. 두 사람이 밖에 외출을 하면 하루세끼 밥 할 필요가 없이 언니 끼니만 챙기고, 조용한 집을 독차지 하면서 언니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가져서 얼마나 좋아.”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게 어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근심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나를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기적인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니면 집나간 아이가 돈이 떨어지면 집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다음엔 돈 대신 마음이 담긴 편지한 장을 써주고, 만취상태로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답시고, 차라리 따뜻한 물 한잔이나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제를 사다주는 게 낫지 않나? 사춘기 아이는 몸보다 마음을 붙잡는 게 중요한 것처럼 덩치는 남자어른도 어쩌면 아내의 작은 관심과 배려와 칭찬과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말에 언니는 피식 웃기만 하였다. 전에 그렇게 시도해본 적이 있거나, 이미 경험하였을지도 모른다는 표정이다.
“언니, 그래도 언니네 가족 모두 다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아이가 학교를 잘 다니고 남편이 돈을 잘 벌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살아. 만약에 그 중에 누구하나 아프기라도 하여 병원에서 지낸다면 언니가 간병해야지 병원비 내느라 뼈 빠지게 일한 돈을 다시 쏟아 붓는 것보다 낫지 않아? 매일 밤늦게라도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미워하는 대신 고마워 해. 그렇게라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혹시나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피우면 더 머리 아파.”
“차라리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낫겠다야.”
“푸하하하. 언니 정말 지쳤구나. 그럼 바람피우는 대신 만약에 정말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 보다 지금 저렇게 자유롭게 다니면, 언니도 언니시간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되지.”
“어휴, 그러게다.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보다 필요한 게 조그마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육체보다 정신이 맑으면, 삶은 더욱 가벼워지고 소소한 행복에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되찾으면서 살기가 편해진다.
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모든 면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안고 살아간다. 멋진 아파트와 고급자동차, 정이 많고 사업에 성공한 남편과 시댁에서 칭찬받는 며느리로 대접받는다. 그 친구는 예쁜 몸매에 키가 크고, 하나뿐인 딸도 예쁜 아이인데다가 공부를 잘하는 착한 딸이라고 한다.
그런 친구가 나와 가끔씩 통화할 때마다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문제는 하나뿐인 딸이 나중에 결혼하여 사윗감이 잘못 들어오면 전 재산을 날린다는 둥, 남편이 요즘 주식을 시작하여 하루아침에 망할까봐 겁이 난다고 하였다. 이럴 때마다 돈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아니 맘 편하다고 해야 하나?
비록 우리의 삶이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이 점점 빈곤해지는 요즘이다. 수많은 물질 속에 둘러싸일수록 그 유혹들이 우리의 정신과 에너지를 마구 갉아먹고 빼앗아가면서 삶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때론 갈 길을 잃고 날개 잃은 새처럼 욕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결핍되어있는지도 모른 채, 물질로 내 결핍을 채우려 하고 정신을 빼앗기는 것들로 텅 빈 내 마음을 메우려고 한다.
그것들을 외부에서 찾을수록 마음은 공허하고 기분이 더욱 우울해지고 삶은 시시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 동안 도처에 널린 불평불만을 끌어들여 살면서 잘못된 판단과 이기적인 생각으로 짧은 생을 더욱 짧게 만들고 아껴야 할 시간과 즐겨야 할 삶을 더욱 낭비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지위, 명예, 돈, 집, 자동차, 가정이 있어도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지 않고 불만, 불안, 근심, 욕망을 가득 싣고 더 높고 아름다운 곳을 올라가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 이처럼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은 모든 기를 하나 둘씩 갉아먹는다고 하였다.
예전에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무지하고 서투른 나는 아등바등 거리며 하루를 피곤에 절어 살아왔다. 그 후, 체한지 몇 달이나 연속되는 증상에 병원을 찾아가보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다. 다행이 스트레스성 장염이긴 하지만 그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암이 온다고 하였다.
사람은 저마다 매일을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수많은 생각으로 문제와 선택의 순간에 부딪치면서 살아간다. 힘든 세상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살아있음으로서 문제가 생기며, 답이 없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듯이, 문제없는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때에’, ‘의무라는 책임감에’, ‘바로해결에 나서야 된다.’라는 생각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가끔은 애쓰고 노력하는 것보다, 세상의 흐름에 맡기면 상황이 훨씬 가벼워지고 해결책이 쉬워질 때가 있다.
무엇보다 파도처럼 연속 들이닥치는 문제 앞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키가 외부가 아닌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의 유혹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정신의 암 덩어리들이 스트레스라는 핵폭탄을 안고 활기에 넘쳐나 우리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기 쉬운 요즘이다.
그럴수록 뾰족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나쁜 세포들을 하나씩 통과해 줄어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복잡한 생각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문제를 한 발 떨어져 거리를 두고 본다던가, 그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해결하기 쉬운 문제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열쇠는 다름 아닌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을 알아가려면 더 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